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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라는 거울을 통해 본 한국 1] 고립된 반도국과 열린 반도국
세계 유일 섬보다 더 고립된 반도국, 대한민국
2015.05.11 16:04 입력
석문희 특파원
stein2004@gmail.com
< 저작권자 © 테마여행신문 TTN.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또 다시 "그 날"이 왔다.
3개월마다 돌아오는 "그 날"이 다가오면, 나는 굉장히 예민해진다.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나는 말레이시아에 관광비자로 머물면서 정기적으로 비자런을 한다. 지금까지 3번의 비자런이 있었고, 그 가운데 첫 두번은 두려움으로 인해 바로 국경을 통과하자마자 여권에 도장만 찍고 돌아나오는 의무적인 비자런이었다.
그러나 세번째는 꽤 용기도 생기고 해서 비자런을 겸한 제법 긴 여행이었다.
이어 네번째 비자런.
비자 갱신일 며칠 앞두고 여권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그 모든 여행계획을 뒤로한 채 우여곡절 끝에 하루만에 번갯불에 콩 볶듯이 갔다와야만 했다. 싱가폴의 경계만 겨우 넘고 온 이번 네번째 비자런 또한 아쉽기만 했다.
그래서 싱가폴 여행은 다음을 기약하고 태국 여행에서의 단상을 뒤늦게나마 적어 본다.
운 좋게 시간을 잘 맞춰 탔음에도 쿠알라 룸푸르와 푸켓은 버스로 장장 20시간 가까이 걸리는 긴 여정이다. 왕복이 아니라 편도로.
버스 안에서의 오랜 생활에 지친 심신으로 새삼 내가 그곳에서 살 때는 전혀 몰랐던 사실을 깨닫는다.
대한민국이 삼면이 바다로 되어 있는 반도국이지만 실제로 섬과 다름없구나, 하는.
유일하게 북쪽이 육지로 연결되어 있으나 바다와 다름없는 통제구역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어찌보면 남한은 사면이 바다인 섬보다 더 고립된 곳이 아닐까?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섬나라 일본과 다를 게 뭔가? 섬나라 일본처럼 배나 비행기가 아니면 제 나라를 벗어나기 힘든 것은 한국도 매 한가지. 그나마 일본은 땅이나 넓지. 그러니까 반도이되 어지간한 섬보다 더 고립된, 고립무원의 땅이 바로 한반도이다.
내가 나고 자란 땅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이 발디디고 있는 바로 그 땅이, 말이다.
그 비좁은 우리 같은 곳에서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고 해서, 집 앞에서 자동차나 버스, 기차를 타고 바로 세계 어디든 갈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한다면 완전한 착각인 것이다. 온갖 빠른 최첨단 교통수단으로 무장돼 있으나 기껏 좁은 우리 안에서 뱅뱅 도는 꼴일 뿐, 육로로는 나라 밖으로 한발짝도 나갈 수 없는 곳이다, 안쓰러운 우리의 대한민국은.
내가 살고 있는 말레이시아 또한 반도국. 남한과 지리적으로 매우 유사하다. 한반도보다는 땅 스케일이 좀 더 크고 이웃 나라들과의 역사적 상황은 매우 다르지만. 그럼에도 대한민국에서 느끼는 반도라는 갑갑함은 없다. 물론 이 '갑갑함'조차 못 느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말레이시아는 기차나 버스를 타면 윗쪽으로는 육지로 연결된 태국을 거쳐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중국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역시 배나 버스나 기차를 타면 아랫쪽으로 싱가폴, 옆쪽으로는 배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까지 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말레이시아는 외려 반도이기 때문에 누리는 이점이 더 많아 보이기도 한다. 사실 대부분의 반도들은 마땅히 그렇다. 오랜 세월 서양 문명의 중심이었던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보라.
그런데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떤가? 반도이기 때문에 생기는 온갖 굴레와 불편을 극대화한 표본이나 다를 바가 없다. 차라리 주위가 다 바다라면 육지에서 북쪽으로 겨우 몇 킬로를 벗어났다고 총질을 당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대한민국은 고립무원의 섬에서 거대한 감옥으로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낡은 이념을 붙잡고서라도 대한민국을 이 상태로 머물도록 방치하다 못해 노력하는 세력들을 의심하는 편이다.
내가 가본 '외국'이라고는 태국과 말레이시아, 싱가폴 밖에는 없다. 그러나 이 세 나라를 육로로 여행하자면 매우 길고 지루한 여행일 수밖에 없다. 교통수단이 대한민국보다 열악한 것도 있지만 정상적인 반도국라면 대개는 이럴 수밖에 없다.
외국을 많이 다녀 본 분들은 남한이, 섬이나 다름없는 코딱지만한 나라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 '코딱지'마저도 산으로 곳곳이 막혀 있는 곳 또한 드물다는 것을.
비자런을 통해 경험 했던, 내 생애 육로로는 가장 긴 여행의 소감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뭐라고 해야 좋을까? 온갖 고군분투와 다사다난과 천신만고를 다 겪었지만, 그럼에도 가난한 방랑자로서의 삶은 매력적이면서도 참 많은 것을 배우게 한다는 거, 그리고 여행은 무엇보다 즐겁고 늘 새로운 체험이라는거. 물론 범죄의 표적 되거나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만 없다면.
나는 장시간의 파김치 태국 비자런을 하는 동안, 부주의로 내가 아끼던 윗옷을 잃어버리고 난 경험자이기도 하다. 여자에게 옷은 제 2의 피부.
아마 페낭 쯤에서 잃어버린 듯한데 한동안 그 옷을 찾으러 페낭으로 다시 달려가야하나 고민을 했었다.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꽤 비싼 옷이기에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진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속으로 한탄한 사실이 있으니, 나는 고작 5박도 되지 않는 여행을 가면서 한 달 이상을 머물듯, 혹은 이사라도 갈듯 엄청난 짐을 싸 갔다는 사실이었다. 낑낑대며 끌고다니던 캐리어에 넣어간 옷의 반도 채 입어 보지 못하고 올 것을.
내가 비록 여행 초보자이긴 해도 다른 초보자들까지 다 이렇지는 않은데 말이다.
감히 말하거니와 제대로 된 여행의 경험은 그 어떤 대통령이나 왕도 부럽지 않게 만든다. 외려 이 모든 것들을 우습게 보이게 만들기까지 한다. 이는 모험과 여행을 즐겼던 작가들과 여행가, 탐험가들이나 등산가들이 수없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
확실한 것은 인생 또한 기나긴 여행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그냥 '여행'이라 하는 여행은 공간적인 개념이 좀 더 강한 반면에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여행은 시간적인 개념이 좀 더 강할 뿐인 것이다.
이 두 여행에서 너무 많은 '재산' 은 외려 도움이 되기보단 '짐'이 될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이 두 여행에서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꼭 필요한 만큼의 짐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안목을 가지게 되는 게 쉽지 않다는 것.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도.
만약 이런 안목과 판단력을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가진다면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바로 노련한 안목을 가진 진짜 여행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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