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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흑역사 II - 재정위기
‘아웃사이더’ 미국이 촉발시킨 유네스코 역사상 최대 위기
2016.05.15 23:15 입력
Ms. Worldwide
ggibbang@hanmail.net
앞서 ‘유네스코 흑역사’로 언급한 신국제정보질서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지 약 30년 후, 유네스코는 ‘재정위기’라는 또 한 차례 고비에 직면하게 된다. 유네스코의 새로운 흑역사를 쓰고 있는 장본인은 바로 신국제정보질서를 촉발시켰던 냉전 체제의 핵심축, 미국이다. 1970년대 신국제정보질서 논의, 1984년 미국의 탈퇴 등 커다란 위기와 변화를 겪으면서도 유네스코는 와해됨 없이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현재진행중’인 작금의 위기는 과거의 것보다 훨씬 더 위태로운 상황이며, 유네스코는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기실 유네스코의 본질은 세계평화와 인류발전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교육, 과학, 문화, 정보커뮤니케이션 등과 같이 일견 비정치적으로 보이는 분야에서 국제협력을 증진하는 데 있다. 그러나 1950년대 자유-공산 진영 간 대립, 1970년대 이후 선진국-개도국 간 정치적 갈등, 2010년대 들어와 이스라엘 점령지역에서의 교육권 및 문화유산 보호 등의 이슈를 둘러싸고 벌어진 첨예한 대립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지나친 정치화로 인해 유네스코의 순기능이 마비된 경우가 왕왕 있었다.
또한 유네스코 전체 정규예산의 1/4에 가까운 분담금을 내는 미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원하지 않는 결정이 표결로 채택될 수도 있다는 점은 최대 재정기여국인 미국으로 하여금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 1980년대 초반 제3세계권과의 갈등으로 미국은 유네스코 탈퇴 및 재정 지원 차단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이후 20여 년 간 유네스코 내 미국의 영향력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대신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와 미국의 탈퇴로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비율의 분담금을 내게 된 일본 등이 유네스코의 중심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1999년에 취임한 일본 출신의 마쓰우라 고이치로 사무총장은 미국이 유네스코에 복귀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이 9.11 테러 이후 국제안보에 대한 시각을 재정립하고 교육의 확대, 유네스코의 유용성을 재확인한 것도 유네스코로의 복귀를 결심하게 된 주요 동기가 되었다. 미국은 2003년 유네스코에 재가입했지만, 2005년 복귀 이후 처음 열린 제33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여전히 미국이 고립되는 상황이 재연되었다. 미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 협약」안이 채택되면서, 초강대국인 미국은 또 다시 유네스코에서 좌절감을 맛보아야 했다.
급기야 2011년에 열린 제36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 결의안이 회원국의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되었다. 유네스코 회원국으로 가입하기 위해서는 유엔 회원국이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 집행이사회 권고 후 총회에 출석한 회원국 가운데 2/3 이상 회원국의 찬성이 필요하다.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 이슈는 1970년대부터 논의되어 왔으나 본격화되지 못한 채 계속 미루어져 왔고, 미국은 자국 의회가 제정한 법률을 근거로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이 성사될 경우 미국의 모든 재정 기여가 중단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유엔기구 가입 열망과 아랍 국가들의 지원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회원국 가입 결의안이 통과된 후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 팔레스타인 국기가 게양되는 모습(출처: www.un.org)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은 자치정부인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state) 지위를 얻는 데 중요한 이정표가 된 반면, 유네스코 입장에서는 세계 경제 침체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 더 큰 재정적 위기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미국은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이 시기상조라고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유네스코의 주요 활동은 계속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유네스코 정규 예산의 22%에 달하는 미국의 정규예산 분담금과 여타 자발적(비정규) 기여금 등이 전면 중단됨으로써 유네스코의 정규 사업은 거의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이 ‘유네스코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충격적인 우려 속에서, 유네스코는 사업을 대폭 축소함으로써 생존 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유네스코는 2012-2013년 예산을 약 30% 삭감하고, 긴급기금(Emergency Fund)를 설치해 회원국들의 자발적 기여를 호소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다. 2011년 11월부터 2012년 2월 사이에 320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직원의 대대적 감원과 함께 통신망 정비계획 중단, 직원 출장비 및 출판물 간행 규모 축소 등 일련의 경비 절감 노력을 통해 미화 3천 1백만 불의 예산을 절감했다.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미국을 방문해 미 행정부 및 의회 관계자들을 만나고, 유네스코가 미국의 국익 추구에 도움이 되는 기구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유네스코에 대한 미국의 재정 지원 재개를 설득했다. 그러나 미국의 재정 지원 재개 시점은 현재까지 예측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편 유네스코는 1999년 마쓰우라 사무총장이 취임한 이래로 내부적으로 지속적인 개혁을 추진해 왔는데, 2009년 제182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 선출된 보코바 사무총장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같은 회기의 유네스코 집행이사회는 21세기에 유네스코가 직면한 외부의 도전과제에 대처하고자 독립평가 추진을 유네스코 총회에 권고했다. 집행이사회의 권고에 따라 같은 해 열린 제35차 유네스코 총회는 독립외부평가(IEE, Independent External Evaluation) 추진 및 관련 예산을 승인했다. 이 독립평가는 유네스코가 현재 안고 있는 문제점을 파악·분석하고, 이에 대한 전략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평가단은 2010년 9월 최종보고서를 제출했고, 이를 토대로 유네스코는 다음과 같이 유네스코 개혁의 5가지 전략방향을 수립하고, 이를 재정 위기 해소의 수단으로도 활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1) 조직 업무에 대한 집중(Focus the work of the organization)
2) 현장에서 보다 효율적인 프로그램 전달(Deliver programmes more effectively in the field)
3) 유엔 내 유네스코의 역할 확립(Define UNESCO’s niche within the United Nations)
4) 파트너십 개발(Develop partnerships)
5) 거버넌스의 능률화(Streamline governance)
향후 유네스코의 재정 위기가 어떻게 해소될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이다. 조직의 존립마저 흔들지 모를 현 위기상황이 기회가 되기 위해서는 유네스코가 스스로에 대해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외부의 가변적 상황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조직 체제 마련에 힘써야 할 것이다. 실제로 마쓰우라와 보코바 두 사무총장의 개혁 의지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는 여전히 비효율적인 의사결정구조 문제, 영향력 없는 수많은 사업과 적은 예산의 문제, 파편화된 조직체계와 비효율적 인사관리의 문제, 조직에 대한 직원들의 낮은 충성도와 사기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70년이 넘는 기념비적인 역사를 보유한 동시에, 유네스코는 노후화된 조직을 전면 쇄신해야 하는 중대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유네스코가 현재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흑역사는 쇠락의 촉매제가 될 수도, 기회의 발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 류석진 외, 『위기의 UNESCO, 어디로 갈 것인가』 (유네스코한국위원회, 2013)
- 유네스코 본부 홈페이지(unesc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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