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낱말들을 쓰고 있었다. 사람들이 동쪽에서 이주해 오다가 신아르 지방에서 한 벌판을 만나 거기에 자리 잡고 살았다... 그들은 또 말하였다. “자,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 그렇게 해서 우리가 온 땅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자.” 그러자 주님께서 내려오시어 사람들이 세운 성읍과 탑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보라, 저들은 한 겨레이고 모두 같은 말을 쓰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일 뿐, 이제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자.” 주님께서는 그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어 버리셨다. 그래서 그들은 그 성읍을 세우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하여 그곳의 이름을 바벨이라 하였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온 땅의 말을 뒤섞어 놓으시고,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어 버리셨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벨탑 이야기의 화두는 ‘언어’이다. 높고 거대한 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 했던 인간들의 오만한 행동에 분노한 신은 본래 하나였던 언어를 여럿으로 분리하는 저주를 내렸다. 바벨탑 건설은 결국 혼돈 속에서 막을 내렸고, 탑을 세우고자 했던 인간들은 불신과 오해 속에 서로 다른 언어들과 함께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과학적·역사적으로 사실인지의 여부를 떠나서, 바벨탑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신은 자신에 대한 인간의 도전을 저지하는 데 있어 ‘언어’를 활용했는데, 이는 그만큼 인간의 삶에 있어 언어가 중요한 동시에 강력한 힘을 제공하는 도구임을 암시하고 있다.
▲화가 피터 브뤼겔의 1563년도 작품 <바벨탑>(출처: 위키피디아)
언어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이다. 언어에 의해 인간은 자연과 다른 집단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지식을 창조하고 후세로 전달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집단이 커지면서 국가가 탄생했고, 언어는 권력이 되기 시작했다. 공동체의 삶을 위해 탄생한 평화로운 언어는 어느새 계급을 가르는 권력이 되었다. 독일의 학자 빌헬름 베르거는 20세기를 ‘권력의 세기’라고 정의한 바 있다. 특히 그는 21세기로 가면서 권력이 미치는 영향력과 범위가 더욱 증가했다고 주장한다. 보다 강력해진 과학기술과 글로벌 금융 경제에 의해 국경을 초월한 세계적 권력이 탄생했으며, 이 권력이 개인의 삶 깊숙이 개입하게 된 것이다.
20세기 권력과 21세기 권력의 근본적인 차이는 전자가 가시적·지역적 힘이었던 데 비해, 후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 인류를 지배하는 힘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어와 같은 특정 언어가 또 하나의 권력이 되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어는 이제 지역을 넘어 전 세계에 영향을 주는 슈퍼 언어가 되었으며, 영어 앞에 다른 언어는 지역어로 전락했다. 영어권 이외의 지역에서는 스스로 영어권 세계에 다가가려는 힘이 더욱 강해지며 지역어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며 이미 많은 언어들이 사라졌고, 살아남은 언어도 몇몇 지역어의 힘에 지배를 받았고 여전히 받고 있다.
유네스코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6,000여 개의 언어 가운데 절반 정도가 21세기에 사라질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2003년도에 유네스코에서 제시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적어도 전체 언어의 43%가 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 더불어 이러한 언어의 소멸은 대체불가능한 문화유산과 대대로 전수되어 왔던 지역 고유의 지식까지 사라지게 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네스코는 창립 이래로 언어의 다양성과 보존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세계 문화다양성 선언」(Universal Declaration on Cultural Diversity, 2001년), 「무형문화유산 보호 협약」(Safeguarding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2003년),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 협약」(Convention on the Protection and Promotion of the Diversity of Cultural Expression, 2005년) 등 유네스코가 채택한 국제규범들이 이러한 활동을 위한 근거이자 기반이 되고 있다. 또한 유네스코는 문화정체성의 주요 수단인 모어의 역할을 강화하고, 그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1999년 제 30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매년 2월 21일을 ‘세계 모어의 날’(International Mother Language Day)로 정하고, 회원국들로 하여금 이를 기념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위기에 처한 전 세계 언어 현황(출처: 유네스코 / 2003년도 자료)
언어다양성 보존을 위한 유네스코의 대표 사업으로는 2001년에 시작한 ‘바벨 계획’(Initiative B@bel)이 있다. 언어 관련 정책 연구 사업, 문자 체계 개발 지원 사업, 인터넷 상의 다언어주의 보고서 작성, 다양한 언어로 된 문화유산 지식 기반 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바벨 계획은 지식 사회를 건설하고 누구나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이 사업은 유네스코가 2003년에 채택한 「다언어주의의 육성과 사이버 공간으로의 보편적 접근에 관한 권고문」(Recommendation concerning the promotion and use of multi-lingualism and universal access to cyberspace)을 실제로 적용시킨 좋은 사례로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유네스코는 언어를 인류의 살아 있는 유산의 핵심으로 규정하고, 사라져 가는 소수언어와 언어다양성 보호를 위해 ‘위험에 처한 언어 프로그램’(UNESCO Endangered Languages Programme)을 운영해 왔다. 여기에는 언어의 소멸 위기에 대한 인식 제고와 언어다양성 증진을 위해 유네스코-유엔 파트너십 프로그램, 유네스코 소멸 위기에 처한 세계 언어 지도화 사업(UNESCO Atlas of the World's Languages in Danger, 1996년-)이나 지역 역량 강화 및 언어 정책 진흥 사업, 소수 언어 보호를 위한 국제회의 개최 등의 사업을 추진해왔다. 2003년에는 소멸 위기의 언어 보호를 위한 국제 전문가 회의를 개최함으로써 각 회원국에게 위험에 처한 언어에 대한 조사와 목록화 사업, 교육 시스템, 미디어, 사이버 세계로의 접근성 강화를 통한 적극적인 활용 방안 모색, 언어 인권의 존중을 통한 지역민의 언어에 대한 자부심 고양 등을 촉구하는 권고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특정 지역 내 토착어에서 해당 지역 환경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를 찾아냄으로써, 지역의 언어다양성과 생물다양성 모두를 보존하는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데도 집중하고 있다.
언어는 권력과 권리의 양면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 "언어는 문화의 로드맵이며,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말해준다"고 했던 미국의 작가 리타 매 브라운의 말처럼, 언어를 통해 나와 마을 공동체, 지역, 국가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고찰하고 그 고유성과 가치를 보존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기본적 권리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 언어가 다른 언어의 근간을 흔들지 않는 선에서 힘과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유네스코의 언어다양성 활동은 가히 21세기의 ‘바벨탑 허물기’라 할 만하다.
[참고자료]
네이버캐스트(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25&contents_id=7886)
네이버 지식백과(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76240&cid=46702&categoryId=46753)
위키피디아(wikipedia.org)
김귀배, 「유네스코의 문화와 언어다양성 보존 노력」 [국립국어원, 『새국어생활』 제17권 4호(2007년 겨울)]
송영빈, 『언어와 권력』 (커뮤니케이션북스, 2015)
『UNESCO's Endangered Languages Programme』 (유네스코, 2010)
『UNESCO Project: Atlas of the World's Languages in Danger』 (유네스코,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