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끊임없는 고비와 극복의 연속이다. 특히 한국인이라면 주위 어른들로부터 ‘삼재’(三災)나 ‘아홉수’를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삼재는 물, 불, 바람으로 인해 인간에게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을 의미한다. 아홉수는 나이에 숫자 ‘9’가 들어가는 시기로, 이때는 결혼, 직장, 재물 등의 대소사에 있어 운이 따라주지 않기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동시에, 더 나은 앞날을 위한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숨고르기’가 우리 인생에 필요함을 일깨워주는 세상의 이치가 아닌가 싶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에 탄생한 유네스코는 공자의 말처럼 ‘마음먹은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從心) 나이가 되었다. 평화를 추구하고 뛰어난 지적 역량을 보유한 ‘노신사’ 유네스코의 삶에는 찬란한 영광도 많았지만, 그 이면에는 파란만장한 ‘흑역사’도 남아있다. 유네스코의 대표적인 흑역사로서 필자는 먼저 ‘신국제정보질서’(NWICO, New World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Order)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내보고자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네스코는 다른 어떤 이슈보다도 신국제정보질서를 통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지만, 동시에 세계 지적기구로서의 역할과 의미에 상처를 입었다.
2차 대전 이후 약 반세기 동안 냉전은 세계를 적대적인 동서 블록으로 나누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제1세계(First World) 자본주의 국가, 그리고 소련 중심의 제2세계(Second World) 공산주의 국가가 그것이다. 이와 더불어 냉전의 산물로서 ‘제3세계’가 등장한다. 1952년 프랑스의 경제사학자 소비(A. Sauvy)가 처음 사용한 용어인 제3세계는 제1세계와 제2세계 외의 국가 집단을 의미하며, 2차 대전 이후 대거 독립한 아시아, 아프리카 및 남미 지역 신생국들이 여기에 속했다. 1960년대에 탄생한 이들 제3세계 국가들은 경제 발전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드러냈으며, 자국에 불리한 국제 체제를 개편하고자 ‘1국 1표’를 원칙으로 하는 유엔에서 수적 다수를 무기로 일련의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1964년 제1회 유엔무역개발회의 총회 참가한 77그룹 대표들(출처: www.g77.org)
그 결과 유엔은 1960년대를 ‘발전을 위한 10년’(Decade of Development)으로 지정하고,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를 창설했다. 제3세계 국가들은 1964년 제1회 유엔무역개발회의 총회에서 선진국에 대한 협상 능력 강화를 위해 개발도상국들 간 회의인 77그룹(Group of 77)을 결성하고, 미국과 소비에트연방으로 양극화된 국제 질서 속에서 강대국 중심의 국제 질서에 맞서기 위해 신생국들이 주도하는 비동맹운동을 구축했다[처음에는 한국을 포함한 77개 국가들의 모임이었으며, 한국은 199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으로 자동 탈퇴된 뒤 참관국 자격으로 있다]. 77그룹을 중심으로 제3세계 국가들은 유엔을 발판삼아 경제불평등, 신식민주의, 인종차별주의, 여타 모든 종류의 예속이나 차별에 반대하는 자신들의 열망을 국제무대에 구현했다. 동시에 유엔 안에서 미국이 행사하던 주도권을 제한했다.
1970년대에 들어와 소속 국가가 100여 개를 넘어서면서 77그룹은 하나의 어엿한 연합체로 유엔 안에서 자리 잡았다. 더불어 이들이 예전부터 요구해 온 ‘경제적 정의’에 대한 열망 또한 커져갔다. 1973년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공세로부터 선진국 중심의 국제경제질서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었고, 이는 개발도상국의 이익을 중시하는 새로운 경제질서에 대한 요청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등장한 ‘신국제경제질서’(NIEO, New International Economic Order)는 현재 세계 경제의 매커니즘은 선진국에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며, 근본적으로 변혁되지 않는 한 개발도상국이 이익은 있을 수 없다는 사고방식에 기반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1974년 제6회 유엔 특별총회에서 「신국제경제질서 수립 선언」을 통해 공식적인 승인을 받게 된다.
그러나 신국제경제질서 결의안이 유엔에서 채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변화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신생독립국들은 그 원인으로서 당시 AP, UPI, AFP 등의 통신사들을 통해 서구가 국제정보질서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기존의 국제정보질서 대신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고자 하는 운동을 추진하게 된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논의는 유엔 기구 가운데 정보커뮤니케이션 분야를 담당하고 있던 유네스코에서 전개되었다. 특히 아마두 마타 음보(Amadou-Mahtar M’Bow) 당시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제3세계에 속하는 세네갈 출신이었기에 유네스코는 더욱 적극적으로 이 논쟁에 개입하게 되었다.
▲‘커뮤니케이션 문제 연구를 위한 국제위원회’의 책임자였던 션 맥브라이드(출처: 위키피디아)
1978년 유네스코는 국가 발전에 매스미디어가 수행하는 역할을 인정하는 「매스미디어 선언」에 이어, 같은 해 12월에 개최된 제33차 유엔 총회는 신국제정보질서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 결과 1977년, 소위 ‘맥브라이드 위원회’로 알려져 있는 ‘커뮤니케이션 문제 연구를 위한 국제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이 위원회는 1980년 최초로 정보 및 커뮤니케이션 관련 이슈를 범세계적 의제로 상정한 최종 보고서인 『맥브라이드 보고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했다. 1982년 유네스코는 AP, UPI, AFP 등 서구 통신사의 특파원 및 보도내용을 제3세계 국가가 규제할 수 있는 소위 ‘균형된’ 새로운 국제정보질서 수립 결의안을 총회에서 채택했다. 이를 반대한 미국은 1984년 유네스코를 탈퇴했으며, 영국과 싱가포르가 그 뒤를 이었다.
비록 제3세계가 유엔과 유네스코에서 신국제경제질서 및 신국제정보질서 수립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자본주의 세계 경제질서의 중심은 유엔이 아니었다. 기실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는 유엔 역사상 최악의 시대였다. 레이건 정부에 자문했던 헤리티지재단은 1982년 발간한 연구 보고서에서 “유엔이 없어야 세상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결론짓기도 했다. 워싱턴 내 미국 재무부,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국제통화기금(IMF) 간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가 주도하는 서구의 미디어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제3세계가 전력을 다해 성사시킨 유엔 및 유네스코 내 결의안이 세계를 변화시키기에는 무력하다는 것이 드러나자, 제3세계는 전의(戰意)를 상실한 채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들게 된다.
▲- ‘세계 커뮤니케이션 문제에 관한 진정한 국제적 견해를 제시하는 최초의 국제 문서’로 평가받는 『맥브라이드 보고서』의 표지(출처: 구글북스)
1980년대 초에 이르러 남반구와 유엔의 영향력은 정치적·경제적 위기로 크게 줄어들면서 국제 문제에 거의 개입하지 못했다. 1984년 레이건 정부와 대처 정부는 유네스코를 탈퇴하면서 기금을 회수해 갔고, 음보 사무총장은 1987년 직위에서 물러났다. 서구권과 협력할 방안을 모색하던 미하일 고르바쵸프도 음보 사무총장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면서 광범위한 정치 변화가 일어났다. 여기에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제3세계 개도국인 석유 수출국들이 유가를 2차례 인상하면서 대다수의 제3세계 신생 개도국들이 외채의 늪에 빠지게 되고, 다급해진 이들은 자구책으로 서구가 지배하는 IMF와 IBRD의 ‘구조조정’ 요구를 수용하기에 이른다. 오랜 시간 전력투구해 온 유엔 기구 내 신국제질서 수립 노력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설상가상으로 오일 쇼크에 따른 심각한 외채 위기까지 겪게 되자 소위 ‘제3세계’는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스스로 와해되고 말았다.
유네스코의 신국제정보질서 수립 움직임은 단순히 국제 커뮤니케이션 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전후 국제정치 질서의 대전환을 야기할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동시에 신국제정보질서는 제3세계가 미국 중심의 기존 국제 질서를 변혁하고자 꾀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도전이었다. 그러나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가 국제 문제의 윤곽을 정하는 포괄적인 존재가 아닌, ‘세계 정치의 축소판’일 뿐이라는 점을 드러내는 지표가 되었다.
유네스코에는 일련의 후폭풍으로서, 제3세계의 와해로 생긴 힘의 공백이 자연스레 다시 유럽 및 일본 등 선진국들이 메우게 되었으며, 이러한 경향은 1980년대 말 소련·동구 공산권의 몰락으로 가속화되었다. 서구 선진국이 장악한 유네스코는 탈정치화, 탈이념화를 지향하면서 신국제정보질서의 잔해를 지우고자 노력했다. 유네스코 활동에서 이념적·비판적인 사업들은 논쟁의 소지가 없는 무난한 사업들로 대체되었다. 특히 인문·사회과학 사업들이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세계적 현안들은 외면한 채 과학윤리 및 생명윤리 사업에만 집중했다. 또한 ‘세계문제 성찰’등 지적인 프로그램이 없어지고, 개도국 커뮤니케이션 장비 및 시설 지원을 주축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 사업에 주력했다. 21세기에 접어든 지금까지 그 기조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1991년에 일본 결의안에 따라 유네스코 집행이사회 이사 자격을 개인 자격에서 정부 대표 자격으로 변경한 사건 또한 꼭 언급해야 할 부분이다. 이는 그간 국가를 대표하는 동시에, 세계적 지성인 개인 자격으로 선출되던 집행이사회 이사 규정을 정부 대표 자격으로 바꿈으로서 유네스코가 세계 지성인의 모임이라는 독특한 전통을 폐기한 채 단순히 각국 정부의 외교관 및 행정가들의 모임으로 변경함을 의미한다. 이로써 유네스코는 세계 지적 기구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다른 유엔 기구처럼 단순한 행정적 국제기구로 전락했다. 이는 신국제정보질서로 인해 유네스코가 입은 내상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었다.
유네스코 본연의 존재적 목적과 역할,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유네스코의 태생적 기반을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유네스코는 1921년 국제적인 지적 연맹체에 관한 국제 연맹의 결의안을 통해 탄생했다. 국제사회의 ‘브레인’으로서 유네스코는 세계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 보다 높은 목소리를 통해 미래의 세계평화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유네스코가 역설하는 통찰력 있는 정책과 규범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며, 유네스코 내부적으로 이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개선의 노력이 필요하다.
[참고자료]
- <유네스코뉴스> 제636호. “톺아보는 유네스코 역사 12장면 5 – 신국제정보질서: 무모한 편가르기인가, 불운의 개혁인가”
- 다야 키샨 쑤쑤, 『국제커뮤니케이션』 (한울아카데미, 2009)
- 매기 블랙, 『유엔: 강대국의 하수인인가, 인류애의 수호자인가?』 (이후,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