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돗토리’ 현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만화가의 DNA를 타고 나는지, ‘미즈키 시게루’나 ‘아오아먀 고쇼’ 같은 일본만화의 대표적 거장들 외에도 ‘돗토리’ 현에는 수많은 만화가가 존재한다.
돗토리 현 공식 홈페이지가 ‘만화왕국 돗토리(http;//manga-tottori.jp)인데, 홈 페이지를 방문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자랑스런 돗토리 툴신 만화가들>일 정도이다.
그 중에서도 또 한 명의 걸출한 만화가가 눈에 띄는데, 바로 ‘심야식당’과 더불어 음식만화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고독한 미식가’의 작화담당인 ‘타니구치 지로(谷口 次郞)’이다.
‘타니구치 지로’ 역시 ‘돗토리’ 현 출신인데, 그는 대표작 ‘14살(원 제목은 ’아득한 마을로‘인데, 우리나라에서는 ’14살‘ 이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다)’의 배경을 익숙한 ‘구라요시’ 시로 선택하였다.
‘倉吉(구라요시)’ 시는 조용하고 아담하면서도 옛 일본의 정취를 잘 간직하고 있는
도시 중의 하나이다.
시청 앞으로 ‘시라카베 도조군/ 아카가와라’ 라고 하는 발음하기 꽤나 어려운 관광 포인트가 자리하고 있는데, 쉽게 말해서 ‘하얀 칠을 한 토담 벽’과 ‘붉은 지붕’을 한 옛 창고건물 단지라고 보면 된다.
입구에서 ‘타니구치 지로’의 만화 ‘14살’의 견본 책을 나눠주는데, 첫 표지의 배경이 바로 ‘시라카베 도조군/아카가와라’의 00호 앞이다.
하얀 색 벽과 붉은 지붕 그리고 파란 하늘이 기막히게 잘 어우러져, 카메라를 대면 말 그대로 작품이 나온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나라 드라마 ‘전쟁의 여신- 아테나’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하얀 벽 건물 옆으로는 작은 개천이 흐르는데, 이 개천에는 사람의 얼굴모습을 한 ‘인면 어’와 ‘금 잉어’들이 살고 있다.
개울을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들 중에서 어떤 녀석이 ‘인면 어’이고 또 어떤 녀석이 ‘금 잉어’인지 처음 봐서는 잘 분간을 못하지만,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대략 감이 올 것이다.
‘시라카베 도조군/아카가와라’는 작은 하천을 따라 옛 창고건물들과 일본 전통가옥들이 사이좋게 머리를 맞대는 형국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일본 특유의 정갈하면서도 앤티크한 느낌을 맛볼 수 있다.
개천 끝 무렵에 ‘구라’라는 이름의 특이한 커피전문점이 있다고 해서 찾아보았다.
나무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보니, 실내 역시 옛 축음기와 LP 판 등으로 우아하면서도 복고적으로 꾸며져 있었다.
일본은 예스러운 찻집이나 끽다점이 많기에 “뭐가 독특하다는 거지?” 하고 두리번거려 보았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없어보였다.
일단 커피를 시켜보았다. 여주인이 커피를 쟁반에 담아 내오는데, 커피 잔 옆 작은 종지에 ‘단팥’이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이 단팥을 커피에 타서 먹는 것이 ‘구라’만의 차별화된 맛이라고 여주인이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커피 본연의 맛을 중시하는 ‘정통 바리스타’가 본다면 기겁을 할 노릇이지만, 워낙 ‘팥빙수’를 좋아하는 탓에 거부감 없이 단팥을 커피에 다 털어 넣었다.
글쎄, 맛이 유니크하다고 해야 할 지 아니면 낯설다고 해야 할 지 감이 잘 오지 않았지만, 발상의 전환만큼은 높이 사고 싶었다.
‘타니구치 지로(谷口 次郞)’의 만화 ‘14살’은 40대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14살 소년으로 변모하게 되는, 영화에서 즐겨 사용하는 ‘시간 역행’을 테마로 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젊은 ‘소피’가 마녀의 저주를 받아 90세 노파로 변하는 것이나, 영화 ‘벤자민 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도 ’시간과 외모의 변화‘를 소재로 한 영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옆 동네에서 탄생한 ’명탐정 코난‘ 역시 고교생에서 초등학생으로 변하는 ’시간의 역행‘을 다룬 영화지 않은가?
40대의 평범한 회사원인 ‘나카하라’는 고향인 ‘구라요시’에 있는 어머니 산소에 성묘를 갔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몸이 14살 소년으로 변모가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후 그리던 첫사랑도 다시 만나게 되는 등, 어찌 보면 나이 들어 삶의 허무함을 느끼게 되는 ‘중년남자의 로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스토리가 전개된다.
“만약 내가 다시 14살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누구를 만나고 또 어떤 꿈을 꿀까?”
어느새 석양이 뉘엿뉘엿 하얀 색 벽을 붉게 물들여가는 시간에, 나는 ‘사라카베 도조군/아카가와라’의 다리난간에 서서 ‘14살’로 되돌아가는 꿈을 꾸며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