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이 미나토’ 시에서 ‘米子(요나고)’ 시를 지나 국도를 달리다보면, ‘명탐정 코난’으로 유명한 ‘아오야마 고쇼 후루사토 관’이 나온다.
작가인 ‘아오야마 고쇼(靑山 剛昌)’의 고향(후루사토)에 지어진 기념관이라는 뜻인데, 2개의 높다란 굴뚝같은 것이 먼저 눈에 띄어서 멀리서 보면 얼핏 공장이나 연구소 같은 인상을 준다.
아니나 다를까? 기념관의 영어이름이 ‘고쇼 아오야마 망가 팩토리(Gosho Aoyama Manga Factory)’이다.
기념관 앞에는 노란 비틀 자동차가 한 대 주차되어 있는데, 물론 불법주차 차량은 아니고 바로 만화 속 ‘아가사 박사’의 애마인 구형 폭스바겐 승용차이다.
굴뚝이 있는 회색의 기념관 건물과 샛노란 딱정벌레 자동차, 그리고 푸른 하늘이 잘 조화되어 말 그대로 포토제닉하기 이를 데 없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는 전시관 입구가 그리고 왼편으로는 기념품 숍이 배치되어 있다. 기념품 숍으로 들어가는 문 옆 벽면에는 이 곳을 찾은 유명 인사들의 방명록과 싸인을 액자에 걸어놓았데, 반가운 이름이 눈에 띄었다.
바로 ‘식객’의 작가인 인기 만화가 ‘허 영만’ 화백의 방명록이 그것이다.
대가는 대가끼리 통한다고 했던가?
“아오야마 선생! 우리는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지낸 듯한 기분입니다. 건필하시고, 고향의 기념관이 널리 알려지시길 바랍니다. - 허 영만”
‘허 영만’ 화백의 겸허하면서도 진정성 어린 방명록을 보니, 우리나라의 만화가들 고향에도 기념관이 세워져서 다른 나라의 만화가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념품 숍은 전시관을 둘러보고 나올 때 들리기로 하고, 오른편 전시관으로 들어섰다. 입장권을 사니 카운터의 안내직원이 한글로 된 퀴즈 판을 건네주었다.
판에는 모두 5개의 퀴즈문제가 적혀져 있었는데, ‘아오야마 고쇼 후루사토 관’ 내부를 들러보면서 퀴즈를 푸는 이를테면 ‘체험 퀴즈 풀기’인 셈이었다.
퀴즈 판을 받아들고 보니,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초급용 문제인데, 혹시나 어른인 내가 못 맞추면 얼마나 창피할까?” 하는 본능적 공포가 엄습해 왔다.
전시되어 있는 진열품들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그리 어렵사리 풀 수 있는 관람객 서비스용 문제들이었지만, 그래도 퀴즈가 주는 본능적 긴장감 때문에 조심스러워 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1. ‘아오야마 고쇼‘ 씨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그린 수채화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2. 오브제 ‘수수께끼 풀기’의 코난이 확대경을 가지고 있는 손은 오른손일까요? 왼손일까요?”
문제 옆에는 힌트가 되는 전시품목이 적혀져 있어서, 초등학생 정도면 다 풀 수 있는 퀴즈였다.
그런데 1 2 3번 문제는 별 어려움 없이 잘 풀었지만, 웬걸? 4번 째 문제에서 막히고 말았다.
“4. ‘아오야마 고쇼 후루사토 관’에 전시되고 있는 독일어 판 ‘명탐정 코난’의 책은 모두 몇 권까지 전시되고 있습니까?”
독일어 판 서가를 휘 둘러보았지만, 워낙 장서가 많다보니 한 눈에 마지막 권의 숫자가 잘 들어오지 않았다.
옆에 있던 초등학교 여학생의 퀴즈 판을 슬쩍 커닝해 보았지만, 이 여학생 역시 잘 모르겠던지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중이었다.
이 때 이리저리 서가를 둘러보던 여학생의 아버지가 큰 소리로 외쳤다. “여기 찾았다. 00 권이야!”
재빨리 퀴즈 판의 답안지에 00권이라고 써 넣었지만, 커닝하다 들킨 초등학생처럼 마냥 기분이 찜찜해짐은 어쩔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4번째 문제를 푼 다음 도착한 방은, ‘변성 나비넥타이’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아가사(브라운)’ 박사가 발명해 준 이 ‘변성 나비넥타이’ 덕분에 코난은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고 사건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데, 역시나 가장 인기 있는 아이템이라서 그런지 꼬마 관람객들이 줄을 서서 체험대기를 하고 있었다.
내 차례가 돌아와서 ‘변성 나비넥타이’를 조작해 보았는데,
“어라! 내 앞의 어린이는 잘도 목소리를 변조해 내던데 어째 내 목소리는 변하지 않는 거지?”
땀을 흘리며 난감해 하는 나를 보던 내 뒤 차례의 초등학생 하나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다가와서 조그다이얼을 살짝 돌리니까 신기하게도 내 목소리가 ‘모리 탐정(유명한 탐정)’ 목소리도 되었다가 ‘콜롬보 반장’ 목소리도 되었다가 하는 것이었다.
‘윌리엄 워즈워드’가 그의 시 ‘무지개’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라고 한 표현이 하나 틀린 것이 없었다.
아이보다 못한 어른이 된 채 도망치듯 2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2층에는 ‘인물 상관관계도’가 벽에 커다랗게 걸려 있었고, ‘코난’의 인형극을 상영하는 ‘아오야마 고쇼 씨어터’도 한쪽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2층에서 다시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 벽면에, ‘호박색의 시간(Amber Time)’ 이라는 제목이 붙은 ‘코난’과 ‘란’이 다정하게 안고 있는 그림이 진열되어 있었다.
“‘호박색의 시간’은 어떤 시간일까?”
영화나 드라마를 찍을 때 ‘호박색(앰버) 필터’를 사용해서 ‘복고적이고 따뜻한 느낌’을 표현하니까, 아마도 ‘코난’과 ‘란’의 ‘따뜻하면서도 소중한 시간’을 상징하는 거라 생각하며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출구에서 카운터 여직원에게 퀴즈 판을 돌려주니, “참 잘했어요!” 라며 빨간 색연필로 동그라미 5개를 그려주던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여선생님처럼 반짝 웃으면서 카드 크기의 작은 수료증을 건네주었다.
4번 문제를 커닝했다는 죄책감에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선생님, 사실은 저 한 문제 커닝했어요!” 라고 돌려줄 수도 없는 법이라 나는 주춤거리며 수료증을 받아드는 도리밖에 없었다.
얼마 전부터 우리나라 케이블 TV에서 이 ‘명탐정 코난’을 다시 방영해주고 있는데, 이 때문인지 오리지널 세대는 물론 요즘 어린이들도 ‘명탐정 코난’에 열광하는 것 같다.
고등학생 명탐정 ‘쿠도 신이치(남 도일)’이 악당들에 의해 약을 먹은 후 초등학생의 몸으로 변하게 되고, ‘에도가와 코난’으로 이름을 바꿔 또다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에 초등학생들이 자신을 코난에 빙의시켜 대리만족을 얻는 게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밀림의 왕자 레오’나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 같은 추억의 TV 만화영화도 다시 방영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오야마 고쇼 후루사토 관’을 둘러보는 동안 내내 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