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갈라파고스의 천연 수영장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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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던 집은 월세를 내어 주었다. 아들과 딸에겐 각각 군대와 일본 유학을 강권했다. 그렇게 주변을 정리(?)하고선 세계 일주를 떠났다. 길어야 3개월이라던 주위 사람들을 뒤로 한 채 떠난 여행은 19개월 동안 무려 50여개국을 만난 뒤에서야 끝이 났다. 2010년, 친정의 고장난 냉장고를 바꿔 볼 요량으로 MBC라디오 <여성시대>에 보낸 사연이 전파를 타며 화제를 모았던 열혈 아줌마 오현숙(53) 씨. 그녀는 맑은 웃음과 함께 당시의 추억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바이트는 푸근한 인상을 가진 중년의 그녀에게서 품어져 나오는 청춘향이 신기했다.안녕! 거울 속의 험상궂은 그대여평범했지만, 오현숙 씨에게는 최선의 삶이었다. 두 아이의 엄마로, 직장 여성으로 참 열심히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 속의 험상궂은 얼굴과 마주한 이후 그녀는 변화된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최선을 다한 그녀의 평생이 배어나는 모습이었지만, 결코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이제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딱 하나 떠오르더군요. 바로 세계 일주였어요. (여행을 위해) 준비를 많이 했어요. 살던 집도 월세를 주고...하던 일도 그만 둔 채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것저것 다 해 봤죠. 그리고 아들 녀석도 군대에 보냈고요(웃음).”
엄마의 뜬금없는(?) 선택 때문에 아들과 딸은 군대로 일본으로 내쫓겼다. 세계 여행을 위한 준비 중 오 씨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들에게는 군 입대를, 딸에게는 일본 유학을 권유한 것이었다. 만화작가가 꿈이었던 딸은 엄마의 요구에 반색했지만, 대학에 갓 입학한 아들은 완강하게 버텼다. 그도 그럴 것이 신입생으로서의 생활을 기대하던 찰나에 군 입대를 하라는 엄마의 말이 들릴 리 만무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도 결국1학년을 마친 뒤 입대했다.
오 씨는 이렇게 주변을 정리한 후 배낭을 쌌다. 그녀에게 친구들은 ‘길어야 3개월이야’ 라고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2008년 4월 중국 시안(西安)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과 가정에 헌신적이던 생활에 잠시 쉼표를 찍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거울 속 험상궂은 얼굴과도 안녕을 고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인도 암리차르 황금사원. 이곳은 시크교 성지로서 매일 수천 명에게 무료급식을 제 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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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세계일주, ‘자유’ ‘아줌마 정신’이 바탕이 되다오 씨는 발걸음이 닫는 곳이 좋아지면 열흘이고 한 달이고 머물렀다. 시시콜콜한 계획을 별도로 세우지는 않았다. 다만 자유롭게 즐긴다는 생각뿐이었다.
“여행의 묘미는 순수하게‘ 나’만을 위해서 24시간을 쓰는 게 아닐까 싶어요. 만일 목표나 계획을 세우고 갔으면, 여행의 참맛을 느끼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영어는 ‘땡큐’한 마디 밖에 몰랐다. 그러나 현지인과 대화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단어를 검색해 몇 마디를 나누기도 했고, 이마저도 안 될 경우엔 만국 공용어인 바디랭귀지를 동원하면 모든 게 해결됐다.
미리 준비해 간 커피포트와 양념통만 있으면 간단히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커피포트에 감자나 달걀 등을 삶아 먹었다.때론 식당에서 밥만 사고 간단한 반찬은 현지에서 채소 등을 사서 직접 만들어 먹기도 했다. 경비를 줄이기 위해 식사를 포함한 항공료, 숙박 등 모든 부문에서 저렴한 것만을 택했다. 그녀가 19개월 간 50여 개 국가를 여행하며 사용한 경비는 총 2,789만원이다. 아줌마 정신이 빚어낸 결과였다.
3_ 터키의 파묵칼레. 터키어 파묵칼레는‘목화 의 성(Cotton Castle)’이란 뜻이며, 이곳은 석회층으로 이뤄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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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있었기에 여행자는 행복했다오 씨는 가장 인상 깊었던 국가로 예멘을 꼽았다. 길을 물으면 자신의 일인 마냥 친절히 알려주었다. 때론 원화로 200원가량 하는 차비까지 선뜻 내주는 이도 있었다. 한국 사람에겐 200원이 별 것 아니겠지만 예멘 사람들에게는 큰 액수였다. 하지만 발길이 닿았던 모든 곳이 친절하지는 않았다. 최고의 복지국가라고 여겼던 북유럽은 그곳 날씨만큼이나 사람들도 쌀쌀맞았다. 세상엔 여러 성향의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느꼈다.
“멋진 유적지나 풍경보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있었던 일들이 기억에 남아요. (특히) 가는 곳마다 친절하게 저를 대해주던 사람들을 보면서 반성 좀 했죠. 생각해보니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상당히 무관심한 사람이었더라고요.”
때로는 즐거우면서도 곤란한 일도 있었다. 아랍권 국가를 여행할 무렵 현지인에게 프러포즈를 받게 된 것이었다. 당시는 어떡해야 하나 싶었지만, 지금은 이 역시 소중한 추억거리다.
“아랍권 국가에서 한국 여자들이 인기가 많다고 하잖아요. 저 역시 프러포즈를 받았어요. 2년 간 100번은 넘을 거에요.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예뻐서 그랬던 게 아니었더라고요(웃음). 거기 사람들은 한국 여자와 결혼하면 호텔이 하나 생기거나 땅 주인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거에요.”
낯선 곳에서 그곳 사람들과 섞이지 못하면 그 어떤 추억쌓기도 불가능할 것이다.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오 씨가 현지인들과 잘 어울릴 수 있었던 비결은 능숙한 요리솜씨였다. 김밥을 내놓으니 젊은 외국 여행객들은 연신 ‘베리 굿’을 외쳐댔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을 때면 간단한 한국 요리를 내놓으며 그 곳 사람들과의 정을 쌓아갔다. 나이 지긋한 이들과 만날 때는 닭백숙을 내놓기도 했다. 역시나 들려오는 말은 ‘베리 굿’이었다.
“50개 나라의 말을 어떻게 다 할 수 있겠어요. 생각만 있으면 다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음식을 통해서 많이 친해졌죠. 사람들이 언어 때문에 해외여행을 망설이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아프리카 나미비아 스와콥문트 사막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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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꿈만 꿀까, 지금 떠날까한국에 돌아온 뒤 여행지가 바뀔 때마다 아들에게 띄운 엽서를 모아 책을 냈다『평생 꿈만 꿀까, 지금 떠날까』이다. 책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젊을 때 떠나라’
여행이 됐든 또는 그 무엇이 됐든 간에 지금 이 순간에 시작하라는 뜻이라 했다. 그리고 꿈과 용기만 믿고 덜컥 저지르지말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차분히 준비해 꼭 해 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인생은 길기 때문에 즐겁고 재밌게 살았으면 해요. 그래야 지쳐서 쓰러지지 않죠. 어떤 인생이건 해야 할 일들을 충실히 해 나가는 게 중요하지만, 단순히 종속이 된다면 무의미합니다. 내 의지대로 현실을 열심히 살고, 하고 싶은 일들을 꼭 해냈으면 좋겠어요. 참, 여행은 젊을 때 갈수록 좋아요. 내 나이만 돼도 무릎이 아파서 많이 걷지 못하거든요(웃음).”
오 씨는 요즘 인문학 수업을 들으며 마음공부를 하고 있단다. 또 다른 도전거리를 찾고 있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시간, 돈, 스펙의 노예로 살지 않기를 바란다는 중년의 그녀에게서 청춘향이 느껴졌다.
안다미 인턴기자(국민대 중어중문과4, dianne37@naver.com)
홍유민 학생기자(동국대 사학과4, yoo_minzz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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