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백수 이경섭01* *** ****
이경섭할아버지는 교회에서의 얘기가 마무리 되어갈 즈음 명함을 하나 내밀었다. 명함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독특했다.
명함에 백수라는 하신 이유가 있나요? 호인가요?(웃음)-백수니까 백수라고 한 거지. 명함하는 집에 가서 주인들과 얘기하다 붙인 건대 그냥 있는 그대로 백수라서 백수라고 한 거예요.
있는 그대로.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단지 '있는 그대로'.한국에서는 벌써 오래 전에 멸종되다시피 한 말이 아니었던가.상황에 따라 부정적으로 쓰일 때가 않은 백수라는 말이, 한국에서라면 은퇴한 지 한참은 되었을 연세의 이경섭 할아버지의 공식 직함(?)으로 쓰임으로써 느낌이 달라진다. 젊었을 때 충분히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는 맘껏 백수로 지내겠다는 여유까지 묻어난다. 사실 할아버지는 백수생할 와중에도 이웃에 자그마한 도움이 될 일을 찾기도 하고 신앙 생할도 열심히 한다.그러니까, 마냥 아무데도 보탬이 안 되고 짐이 되기 일쑤인, 최첨단 자본주의에 신자유주의까지 보태진 거대 시스템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한국의 무능력한 백수와는 격이 좀 다르다고나 할까.
고향이 북한이시라구요?
-네. 압록 강변에 있는 강계라는 곳이에요. 깡촌이었어, 깡촌. 3남 2녀 중에 막내였는데 국민학교 6학년 때 횡성으로 유학 왔어요. 그 때는 중학교를 시험쳐서 들어갔거든요. 저를 중학교에 보내려고 가족들이 서울 쪽으로 횡성으로 내려왔어요. 의사였던 둘째 형이 서울에 있었으니까.
학창시절 얘기 잠깐 해 주시겠어요?-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정말 좋은 분이었어요. 선생님이 풍금을 치면서 우리한테 러시아 민요를 얼마나 많이 가르쳐 줬는지 몰라요. 지금도 하나도 안 잊어버릴 정도로 노래를 참 많이 부르고 했어요. 학교 가는 게 즐겁고 재미있어. 그런데 러시아 민요 말고도 공산주의 노래도 좀 있었어요.우리는 뭔지도 모르고 따라 불렀지. 그런데 어느 날, 수업 중에 순사들이 들이닥쳐서 선생님을 잡아가요. 우리가 보는 앞에서. 빨갱이라고.그 때 얼마나 울고불고 했는지 몰라요. 우리 선생님 잡아가지 말라고. 반 전체가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지.공산주의자든 뭐든 우리한테는 정말 좋은 선생님이었거든. 지금도 그 선생님이 가르쳐 준 노래 한번씩 듣거나 부르면 마음이 짠 해져요.
그 때가 전쟁 전이었나요?-그렇지요. 그러고 나서 몇 달 뒤에 내가 서울에 있는 중학교로 갔어요. 중학생이 되고 한 3개월인가 뒤에 6.25가 터졌어요.
무섭고 힘들었겠어요.
-아휴, 말도 말아요. 끔찍해.둘째 형이 의사였고, 집에서 굶어 죽지 않을 만큼 농사를 짓는데도 전쟁 중엔 굶어 죽을 뻔 했어요. 서울에 있던둘째 형이 의사를 싫어하는 이웃집 무당의 신고로 빨갱이 누명을 쓰고 고발당해 잡혀 갔어요. 식구들은 횡성에 있으니, 하루 아침에 서울에서 고아가 된거지.미군 쓰레기통 뒤져서 겨우 목숨을 부지했는데, 사람이 너무 오래 굶어서 뼈만 남게 되잖아요? 그러면 배는 불룩한데 머리가 무거워요. 아프리카 애들처럼. 눈 앞도 가물가물해져요. 그래, 일단 사람들이 횡성 집으로 가라고 해서 갔어요. 걸어서. 그러다 밤이 되면 사람 사는 집에 들어가서 자고 밥은 가다가 얻어 먹고.어떤 땐 머리 위에서 마을이며 다리가 폭격 당하는 것을 볼 때도 있었어요. 너무 많이 걸어서 발에서는 피가 나고. 그런 몸으로 걸어서 걸어서 동네 근처까지 와서는 기절해 버렸어요. 나중에 깨보니 사람들이 어디 사는 뉘집 자식이냐고 묻길래, 우리 동네를 말하니까 가르쳐 주더라고.
전쟁 중이라 먹을 게 넉넉치는 않았을 텐데. 건강은 회복하셨어요?-다행히 시골은 농사를 지으니 굶어 죽지는 않아요. 그 때는 도시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더 많았어요.
그런데, 전쟁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횡성 또한 번갈아가며 남한군과 북한군에 중공군과 미군까지 가세해 힘겨루기를 하는 곳이 되어버렸던 것.
할아버지의 한국전쟁 당시 얘기며, 한국에서의 성장과정 또한 파란만장 그 자체다. 중공군이 왔을 때 인근에 있는 공근면을 아냐고 물었을 때, 아무 생각없이 그렇다고 했더니, 거기까지 얼결에 안내자가 되기도 했다고. 폭격을 피해 한겨울 밤에 이동을 했는데 치열한 전투가 휩쓸고 간 공근면은 살아 움직이는 것 하나없이 참혹했다고 한다. 아마 할아버지가 한국인 중에는 최초의 목격자가인 것 같다고 한다. 지면 관계상 이경섭 할아버지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 옮기지는 못 했다. 혹, 책이나 얘기로 엮어주실 뿐이 있다면, 할아버지가 점심은 사 주실 수 있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이경섭 할아버지의 삶을 드라마나, 영화, 소설이나, 일대기로 만들어 볼 의향이 있는 분들은 연락바란다. 다시, 말레이시아로 화제를 돌려서.
겪어 보니, 말레이시아가 치안이 아직 좀 미흡한 부분이 있는 것 같던데.혹시 사고를 당한 적은 없었어요?
-밤에 슈퍼에 가서 음료수 두 병을 사들고 걸어 오는데 오토바이 날치기들이 지나가다 그 안에 뭐가 돈 될 만한 게 있는 줄 알았나 봐요. 나를 확 밀치고 그 봉지를 채 갔어요. 그 바람에 시멘트로 된 수로 저 아래로 떨어져서 피투성이가 된 적이 있어요. 온몸이 심하게 다치고, 머리는 피범벅이 되고 손가락의 살점이 떨어져 나갔어요. 지나가던 사람들이 병원에 데리고 가 줘서 치료를 받았는데 의사 말이 다행히 온몸이 피투성이인데도 뼈는 안 다쳤다네요.그런데 말레이시아에서 이렇게 다치는 경우는 드물어요. 대개는 잡범들이라 크게 다치는 일은 많이 없어요. 오히려 큰 범죄는 한국보다 적은 편이에요.
그 밖에도 이곳에 와서 힘들었던 적도 있으셨을 텐데요. 언제 가장 힘들었나요?-사기를 당하고 결핵 재발 한 거 말고도 댕기열에 걸려 죽을 뻔한 적도 있어요. 얼마나 심했던지 의사가 식구들을 불러다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답니다.그런데 운 좋게 살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나는 행운아예요.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가장 최근에 한국에 간 적은 언젠가요? 2000년에, 그러니까 약 15년 전에 마지막으로 한국에 갔었어요. 여기 가족을 데리고 갔어요. 집사람이랑 애들한테 한국구경을 주고싶어서.
그 때 당시 한국에 대한 인상은 어땠나요?-엄청나게 변했구나, 하는 거죠. 한국은 갈 때마다 달라져 있어요.한국에 며칠 있다가 비행기 타고 다시 말레이시아 공항에 내렸는데 후끈한 바람이 확 몰려와요. 그런데 그 느낌이 얼마나 반갑던지 속으로 '아, 드디어 고향에 왔구나' 했어요.(웃음)
한국 국적은 그대로인가요?
-그거는 내 자존심 같은 거예요. 외국에 나가면 다들 애국자가 된다고, 나도 별 수 없이 그렇게 되더라고. 여기서 매일 한국 뉴스 꼬박꼬박 챙겨 봐요. 아직도 한국이 궁금하고, 걱정되는 마음이 있어요. 가끔 시민권 얻으면 선거권까지 생기는데 왜 영주권만 갖고 있느냐고 묻는 말레이인들이 있어요. 거주권이나 영주권까지는 국적을 안 바꿔도 되는데 시민권을 받으려면 한국국적을 포기해야 되니까.
말레이시아에서의 일상은 주로 어떻게 되나요?-운동하고, 아는 사람들 만나러 외출하고, 정원 가꾸고 그래요. 이 정원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이게 바로 내 건강을 지켜주는 정원이라고. 정원 일을 하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자랑스러운 듯 디딤돌 하나에서부터 바베큐 그릴까지 자신이 직접 조경하고, 만든 정원을 둘러보셨다. 이 정원에는 넓은 탁자와 열 명은 넘게 않을 수 있는 의자도 있다. 이 곳에서 가족이나 친지들의 생일이나 축하 할 일이 있을 때 바베큐 파티를 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말레이시아로 여행이나 이주를 생각하고 있는 분들께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젊은이들은 이 곳에 와서 거주할 생각이라면 이런저런 어려움이 좀 많을 수 있어요. 여기서 사업하기가 쉽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여행오거나 은퇴해서 살기에는 얼마나 좋은 곳인지 몰라요. 아마 내가 지금까지 한국에 살고 있었다면 여태 살아 있지도 못했을 걸요. 여긴 일년 내내 따뜻하니, 얼마나 좋아요. 나처럼 늙은이들에게는 딱이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말레이시아에서의 노후를 만족스럽게 즐기면서 사시는 이경섭 할아버지. 말레이시아에 머무른지 42년이나 되는 만큼,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니라. 이쯤에서, 시나브로 몇 번이나 삼천포로 빠지곤 했던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 한국 전쟁 이야기는 뺄까 하다가 불과 한 세대만에 잊혀지기에는 너무나 큰 민족적 비극이기에 대강만 간추려 싣는다. 본의 아니기에 6.25특집이 돼 버린 점, 양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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