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웠던 지난여름의 끝자락,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던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전]을 찾았다.
미술이나 만화를 전공한 것도 아닌 터라 ‘레이아웃’이라는 얼핏 전문적인 느낌을 주는 전시회를 꼭 가야하나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가보지 않으면 내가 좋아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라는 근거 없는 사명감 때문에 전시회가 끝나기 얼마 전에야 허겁지겁 찾게 된 것이었다.
마치 ‘에릭 클랩튼’의 최근 음악들에는 큰 감흥이 없지만, 내 어릴 적 삶의 일부분이었던 ‘레일라(Layla)’ ‘화이트 룸(White Room)’ 등 그의 전성기 음악들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비싼 티켓을 끊어서 콘서트를 보러가는 것과 매한가지심경이었다.
그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에 대해서 침을 튀겨가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아왔는데, 정작 그의 전시회(그 전시회가 ‘레이아웃 전’ 이든 ‘초창기 습작 전’ 이든)를 가보지 않았다면 그동안의 어설픈 예술적 허세가 명명백백 드러날까 두려웠다는 편이 솔직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로버트 카파’나 ‘스티브 매커리’의 사진 전시회를 보러갔을 때는 그동안 익숙하게 접해왔던 그들의 대표작들 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진들에서조차 더 큰 감동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었지만, 아무래도 애니메이션이 아닌 ‘레이아웃’ 이라는 모호한 대상물이 주는 선입견 때문에 “전시회를 보고나서 감동을 못 받으면 어떡하지?” 라는 우려가 전시회를 보러가는 도중에도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전시회장 입구를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벼랑위의 포뇨’ 의 컬러사진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레이아웃 컷이었다.
표를 사서 안으로 들어가니 정면으로는 ‘레이아웃’이 무엇인지를 간략하게 설명한 패널이 보이고, 이어서 오른 편 벽면부터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작들의 ‘레이아웃’들이 촘촘히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회장 내부에서는 사진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어서 사진을 한 장도 못 찍고 나온 점이 다소 아쉬웠지만, 이 아쉬움은 밖으로 나와서 ‘가오나시’ 복장을 한 캐릭터와 기념사진을 찍는 걸로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다른 관람객들 역시 조금은 미진함이 드는 표정들이었지만, 가오나시와 기념촬영을 하거나 대형 벽면에 방명록을 작성하는 걸로 만족하는 눈치였다.
다들 집에서 열심히 준비들을 해 왔는지, 벽면에 그린 커리커추어 그림들이 꽤나 수준들이 높아 보였다. 물론 ‘가오나시’나 ‘마쿠로 구로스케(숯 검뎅이)’ 같은 비교적 따라 하기 쉬운 그림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개중에는 꽤나 공을 들여 그린 캐릭터 그림들도 눈에 띄었다.

어떤 방문객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유바바’의 그림을 커다랗게 그려 놓았는데, 아마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이 그림을 본다면 당장 스카우트 하겠다고 할 정도의 전문가 수준의 그림도 있었던 것 같다.
나 역시 벽면 맨 끝자락에 수줍게 ‘가오나시’와 ‘마쿠로 구로스케’의 그림을 그려놓고 나와서는,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가오나시’ 분장을 한 캐릭터와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전’을 보고난 소감은?
솔직하게 이야기 하자면, 마술사가 자신의 마법트릭을 공개함으로써 좀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비쳐지는 반면 뭔가 그동안의 환상이 살짝 깨어진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아무튼 자칭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추종하는 입장에서 눈도장을 찍었다는 심리적 홀가분함을 안고 집에 돌아왔는데, 그날부터 갑자기 어린 시절 보았던 TV 만화영화가 마치 알라딘의 요술 주전자에서 기어 나오는 지니처럼 내 기억 속에서 하나둘씩 솔솔 튀어나왔다.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코흘리개 어린 시절 흑백 TV 만화영화에 빠져 있었던 때와 2000년대 들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에 심취된 것을 제외하면, 솔직히 1980년대와 90년대의 인기 만화나 애니메이션에는 별로 재미나 감흥을 못 느꼈던 것도 사실이었다.
간간이 ‘들장미 소녀 캔디’나 ‘슬램덩크’에 열중한 적도 있었지만, ‘독수리 5형제’ ‘마징가 Z' 는 물론이고 ’공각기동대‘나 ’신세계 에반게리온‘ 같은 애니메이션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기념비적인 애니메이션에도 시큰둥했었던 기억이 난다.
반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은 대표작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이웃집 토토로’는 물론, 1980년대 나온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를 위시해서 90년대의 ‘모노노케 희메(원령공주)’까지도 내 취향에 쏙쏙 잘 맞았던 것 같다.
비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뿐 아니라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나온 다른 애니메이션들(예를 들어, ‘다카하카 이사오’ 감독의 ‘추억은 방울방울’이나 ‘미야자키 고로’ 감독의 ‘고쿠리코 언덕에서’ 등)도 정서적으로 나와 잘 맞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렵고 복잡한 SF 성향의 소재나 주제’를 다룬 만화보다는 옛 흑백 TV 만화와 맥을 같이 하는 ‘서정적이고 복고적인’ 감성 애니메이션이 딱 내 취향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전’을 다녀오고 나서 가장 먼저 내 아련한 추억 속을 비집고 나온 레트로 TV 만화영화(당시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전문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요괴인간 벰”과 “황금박쥐” 그리고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흑백 TV의 영상은 기억에 가물가물한 반면 그 주제가들은 내 온몸이 기억을 해 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요괴인간 벰’의 벰 베라 베로의 캐릭터들은 안간힘을 써도 잘 떠오르지 않는 반면, “빨리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주인공들의 절규는 아직도 생생하게 귓가에 맴돈다.
“어디 어디 어디에서 오는가? 황금박쥐 ~ 빛나는 해골이 정의의 용사다 힘차게 나는 실버배턴 우주의 괴물을 물리쳐라 ”
라는 ‘황금박쥐’의 주제가 역시 별로 어렵지 않게 내 입에서 흘러 나왔다.
‘데츠카 오사무’의 대표작인 ‘우주소년 아톰’보다 개인적으로 더 좋아했던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는 영상이 한 장면도 잘 떠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노래는 지금 불쑥 불러도 거의 가사 한 자 틀리지 않을 정도로 술술 기억이 난다.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 푸른 바다 밑에서 잘도 싸운다
용감하고 씩씩한
마린보이 소년은 우리 편이다“
지난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박 태환’ 선수의 주제가처럼 사용된 CF속노래 (탤런트 ‘김 수현’이 불렀던 걸로 기억한다)는, 내 가슴을 실로 오랜만에 무지개를 좇는 소년처럼 두근두근 다시금 뛰게 해 주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는 도대체 누구와 싸웠을까?” 라는 생뚱맞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우주소년 아톰’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푸른 하늘 저 멀리 랄랄라 힘차게 나는
우주소년 아톰 용감히 싸워라“
빨간 장화를 신고 순진무구한 표정을 한 아톰은 또 누구와 싸워야 했었을까?
‘황금박쥐’는 한술 더 떠 “우주의 괴물을 전멸시켜라”
라고 하는, 환경보호운동가들이 들으면 기급을 할 가사로 채워져 있다.
우리 시각에서는 적일지라도 우주괴물도 하나의 고귀한 생명체임에 분명할 텐데 ‘전멸’을 시키다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는 벌레들과도 서로 화합하고 용서를 하는데 ---
아무튼 지금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맨 날 싸움을 부추겨 ‘어린이들의 정서를 해치는 호전적인’ 가사가 대부분이지만,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동요보다 더 기억에 생생한 것을 보면 당시의 TV 만화영화 주제가들은 꽤나 긴 생명력을 가진 그 시절의 꿈과 추억이 깃 든 문화의 한 부분이었던 것 같다.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展’은 그 자체의 감동도 감동이지만, 그동안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내 어린 시절의 꿈과 동심을 일깨워 주었고, 옛 TV 만화영화의 추억을 거슬러 ‘지브리 미술관’ 까지 연결하는 ‘낭만레트로 일본 애니여행’을 실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떠나자!
한 조각의 빵과 나이프와 램프를 가방에 넣고 떠나자
아버지가 남긴 뜨거운 마음
어머니가 주신 아름다운 눈빛“
‘천공의 성 라퓨타’의 O.S.T. '너를 태우고‘를 떠올리며, 나는 나이프와 램프대신 몇 권의 만화책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DVD를 낡은 여행 가방에 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