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휠러| 안그라픽스 ㅣ 2009.1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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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휠러의 『나쁜 나라들』, 그 두 번째 여행지는 아프가니스탄이다. 아프가니스탄은 토니 휠러가 설정한 악의 계수(the evil meter)에서 북한 다음으로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자국민 인권탄압, 테러리즘과의 연계성, 이웃국가들에 대한 군사적 위험도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군사력 개입을 2011년까지 종결하겠다고 선언했다. 때문에 탈레반 색출을 위한 군사작전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각국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파병과 민간지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는 2010년 민간지원(PRT) 방호 병력으로 아프가니스탄에 350명의 국군을 파병할 것이라 밝혔다. 이에 대한 찬반 논란은 여전히 거세다.
민간인 신분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다녀온 토니 휠러의 견해는 가장 현실적인 아프가니스탄의 현재지점을 묘사한 자료일 것이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이 가진 문제점, 즉 탈레반의 테러, 관료의 부정부패 등의 문제점을 진단하기에 앞서 아프가니스탄은 왜 현재와 같은 극단적 상황에까지 처하게 됐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론리 플레닛의 미국 주재 글로벌여행 편집장인 돈 조지가 말했다. 만약 아프가니스탄이 석유를, 사우디아라비아가 카펫을 생산 했다면 과연 어느 나라가 미국의 폭격을 받았겠는가?” -본문 32p
토니 휠러는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 성장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위해 국제적 지원과 능력 있는 행정 관료의 국가 운영이 필요 하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노력들을 탈레반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안정적인 치안확보를 강조하고 있다.
누가 아프가니스탄을 나쁜 나라로 만들어 왔는가?
토니 휠러가 아프가니스탄을 방문 했을 당시는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한 2006년이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을 분쟁의 나락으로 몰아간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는데 긴 지면을 할애했다.
“1973년 아프가니스탄의 전제군주 ‘모하메드 자히르 샤’가 로마로 휴가를 떠난 사이 사촌 다우드 칸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후 샤는 29년 동안 로마에 체류했다. 그는 2002년에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동안 아프가니스탄에는 소련의 침략, 시민전쟁, 무자헤딘의 만행, 탈레반의 전제정치, 테러와의 전쟁 등 끊임없이 분쟁이 계속 됐다.” -본문 191p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중앙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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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당시에는 자살폭탄테러가 자주 발생 했으며 외국인 근로자가 납치되거나 경찰 및 정부 관료가 살해당하는 경우도 흔히 일어났다. 또한 탈레반이 세력을 회복해 수많은 NATO 군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평화나 사랑, 행복 따위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본문 194p
“1994년 후반 텔레반이 칸다하르 근처에서 봉기하여 카불을 향해 행군한다는 소식을 들었던 때가 생생히 떠오른다. 이들은 무자비한 무자헤딘을 격퇴시키고 더 이상의 약탈과 강간을 막으려 했지만, 실제로는 단지 가해자만 바뀌었을 뿐 똑 같은 행태가 변함없이 반복되었다.” -본문 210P
아프가니스탄을 파탄으로 몰아 간 세력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그 첫 번째는 1960년대 전제군주의 무능한 통치와 부정부패다. 팔레비 왕조의 부정부패와 무능은 사회주의 혁명 쿠데타를 초래한다. 이로인해 전제군주의 몰락 이후 제대로 된 근대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아프가니스탄은 수많은 정치 세력의 난립과 군벌의 대립으로 고통 받게 된다
두 번째는 1970년대 소련군정의 침략과 무자헤딘의 대립이다. 이로 인해 아프가니스탄은 본격적으로 전쟁의 포화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후일 무자헤딘은 알카에다와 연계되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폭력과 테러를 똑같이 자행하게 된다.
마지막은 탈레반이다. 이슬람 신정 국가 건설을 위해 결집한 이들은 테러, 마약, 관료들의 부정부패와 깊게 연관되어 근간을 유지하게 된다. 탈레반은 소련 군정에 대항해서 전쟁을, 무자헤딘의 폭정에 대항해 민중들에게 환영받았다. 그러나 이들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범죄 집단으로 변질된다. 이후 9.11테러를 자행한 알카에다 세력을 보호한 탈레반은 미국의 군사적 개입의 원인이 된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현재 경제적 위기와 치안 불안에 놓여있다. 연일 폭탄 테러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다국적군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쯤에서 다국적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결정적 요인인 탈레반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발전의 가장큰 걸림돌이다 ⓒ중앙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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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은 ‘수염, 총, 도요타 하이럭스, 권력’을 가진 누군가가 지배하고 있는 나라였다.” -본문 199p
“탈레반은 이슬람의 율법을 엄격하게 지켰다. 자유와 인권이 강탈당했고 여성은 직업을 가지는 것이 금지되었다. 소녀들은 학교에 갈수도 없었다. 이에 저항하는 자는 누구나 처벌을 받았다. 탈레반의 등장으로 아프가니스탄에는 자유와 인권이 사라졌다.” -본문 206p
“2001년 초 아프가니스탄은 온통 혼돈의 도가니였다. 9월 9일에 탈레반의 지도자 마수드가 암살당하면서 상황은 더욱 엉망으로 변해갔다. 며칠 후 9월 11일, 탈레반은 비행기 네 대를 공중 납치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 가는 것으로, 최대의 적인 미국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다.” -본문 208p
토니 휠러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자행하는 범죄를 정리했다.
“탈레반은 과거 권력을 거머쥐었을 때 아편 생산을 강력히 단속했지만, 이후 주요 세력을 잃고 난 후에는 정책 자체를 완전히 뒤바꿔버렸다. 현재 마약 사업은 탈레반의 폭력사태를 부추길 뿐만 아니라, 마약 지배지에서부터 전 세계마약 거래 업자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자연히 파키스탄, 옛 소련의 중앙아시아 공화국, 이란 까지 퍼져 나갔고 이들 국가는 마약중독, 범죄, 살인 등의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다. -본문 227p
“탈레반으로 인해 국제단체들의 구호 활동조차 점점 어렵게 되고 있었다. 탈레반의 구체적 기반이 완전히 축소되면서 아랍의 극단주의 단체 알카에다가 점차 세력과 영향력을 넓혀가기 시작하고 탈레반을 장악했다. 이후 탈레반의 폭력성은 극에 달하기 시작한다.” -본문 206p
아프가니스탄의 해법은 경제 회복부터
아프가니스탄의 정상화를 가로 막는 것은 탈레반뿐만이 아니다. 이들과 결탁해 부정부패를 저지른 관료들도 큰 장애물이다.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은 크다. 현 대통령 카르자이와 야당 압둘라 후보가 맞붙은 2009년 아프가니스탄 대선과정에서도 카르자이 측의 수많은 비리가 고발 된 바 있다.
“문제는 바로 타락하고 비효율적인 ‘아프간 정부’에 군중들의 분노가 폭발했다는 데에 있었다. 수많은 국제 원조금은 평화유지군과 NGO 기관에만 집중 될 뿐, 실제 아프간 국민들은 거의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했다.” -본문 140p
“아프가니스탄에는 탁월한 행정가가 필요하다.” -본문 228p
토니 휠러는 탈레반을 지원한 사람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이라고 분석한다. 따라서 탈레반을 근절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프가니스탄을 경제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탈레반을 제거하기 위한 가장 빠른 방안은 먼저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경제적 안정을 취하도록 하는 것이다. 탈레반과 결탁해 부정부패에 노출된 관료도 정리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테러 따위는 관심도 없이 자신들의 삶을 꾸려 나갈 것이다. 다국적군의 치안 확보가 이러한 정책을 보조해 주어야 한다.<중략> 아프가니스탄이 가진 수많은 관광자원으로도 승산은 있다.” -본문 240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