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대표가 운영하는 ‘남도마실길’은 광주를 중심으로 호남 전역을 누비는 테마여행 전문 여행사이자, 여행컨설팅업이다. 명함에 대표가 아니라 ‘이장’이라고 새겨져 있는 박 대표는 손님을 여행사와 고객이 아니라, 이웃이자 친구처럼 친분을 나누며 오직 남도마실길만의 개성넘치는 여정에 반한 이들로 북적거린다. 한국학호남진흥원이 후원하는 ‘전라도 천년기행’은 11월 16일 의향(義鄕), 23일 의예향(義藝鄕), 12월 7~8일 황룡강일원의 선비흔적 답사란 주제로 진행되며, 테마여행신문은 지난 16일 성료한 의향(義鄕) 투어를 밀착 취재했다.
의향(義鄕) 투어는 오전 8시 광주광역시청을 출발해 조선수군 재건 출정공원, 구례읍사무소, 전남 민간정원 제5호 구례 쌍산재, 석주관 칠의사전적지, 연곡사를 답사한 후 보성으로 이동해 방진관과 열선루를 돌아보는 당일치기 여정으로 진행되었다. 의향(義鄕)이란 주제에 걸맞게 이순신 장군과 의병들의 핏방울이 맺힌 전적지는 물론 일제 강점기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유적지를 아우르는 코스로, 호남을 근거지로 종횡무진하는 남도마실길이 아니라면 기획 자체가 불가능한 여정이였다. 그래서일까, 그 흔한 광고 하나 올리지 않는 상품인데도 불구하고, 45인승 버스에는 빈자리 하나 없었다.
전남이 2011년 개통한 백의종군로에 이어 새롭게 선보인 ‘조선수군 재건로’는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 이순신 장군이 섬진강을 출발해 해남에 당도하기까지의 여정을 복원한 500 km의 길로 구례, 곡성, 순천, 보성, 장흥, 강진, 진도 등을 거친다. 도보와 자전거길, 그리고 찻길로 굽이굽이 연결된 조선수군 재건로 60여 곳에 해설판이 설치되었고, 그 중 일부는 일반인이 관람할 수 있도록 공원, 전시관, 박물관으로 조성되었다.
의향 투어의 첫 번째 목적지는 이순신 장군이 쉬어간 구례 손인필 집을 공원화한 ‘조선수군 재건 출정공원’으로 비교적 최근인 2015년 조성되었다. 9명의 군관과 6명의 병사와 함께 이순신 장군을 새긴 부조를 비롯해 손인필 비각, 장군이 밤새 고민한 ‘백의종군 바위’와 구국정 등이 있는 조그마한 공간이다.
불과 15명의 수하와 함께 수십만 명의 왜적과 전쟁을 치르러 가는 장군의 심정이 어찌하였을까.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거친 바위를 손으로 쓸어본다. 손인필은 이순신 장군을 따르며 인근의 석주관성은 물론 숱한 전투에서 활약한 인물로 노량해전에서 순절하였다. 이곳을 ‘손인필의 집’이라고 해도 좋았을 것이나, 굳이 ‘조선수군 재건 출정공원’이란 이름을 별도로 붙인 것은 그의 집에서 병사와 물자를 모아고, 왜적에 맞설 계략을 다듬어 본격적으로 출정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나라 3대 정원’으로 담양 소쇄원, 영양 서석지, 보길도의 세연정을 꼽는다. 그러나,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3곳 외에도 전국 각지에 속세를 피해 선비들이 은거한 정원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러나, 오랜 시간을 거쳐 소실되거나 일반에게 개방되지 않는다면 여행자에게는 없는 것과 별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전남도는 2017년부터 ‘민간정원’이란 인증제도를 실시해 제1호 고흥 힐링파크쑥섬쑥섬을 시작으로 제2호 담양 죽화경, 제3호 보성 초암정원, 제4호 고흥 금세기정원, 제 6호 보성 갈멜정원, 제7호 고흥 장수호 힐링정원까지 총 7곳을 선정해 일반인도 부담없이 방문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제5호 민간정원으로 선정된 구례 쌍산재는 현 소유주의 고조부 호에서 따온 이름에서 짐작하듯 오래된 고택을 중심으로 차밭, 당몰샘, 사당, 연못과 인근의 호수를 갖춘 고즈넉한 공간이다.
사적 106호로 지정된 구례 석주관 칠의사묘(求禮 石柱關 七義士墓)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에 설치된 석주관(石柱關)에서 왜적과 맞서 싸우다 숨진 일곱 명의 의사를 모신 곳으로,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숱한 의병, 승병이 피를 흘린 전적지다. 현재의 칠의각과 영모정은 1946년에 이르러 추가된 것으로 영모정 뒷문으로 오르면 산등성이에 축조한 석성의 일부가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다. 칠의사묘(七義士墓) 좌측으로 백여 미터 오르면, 칠의사비가 있다. 그런데, 칠의사묘(七義士墓)의 묘를 아무리 헤아려봐도 일곱이 아니라 여덟인데, 이는 당시 구례 현감 이원춘의 묘까지 총 8기의 묘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
구례의 마지막 방문지는 연곡사다. 연곡사는 국보 53호로 지정된 동 승탑(東 僧塔)과 54호 북 승탑(北 僧塔)를 비롯해 여러 승탑으로 유명한 지리산 피아골의 전통 사찰이다. 그러나, 의향(義鄕) 투어의 목적지로써 연곡사에서는 스님보다는 의병장 고광순을 만나야한다. 고광순은 구한말 활약한 의병으로 호남의병의 거점이자 본영을 연곡사에 두고 활약했다. 십여년간 숱한 왜군을 처단하였으나, 1907년 연곡사를 습격한 왜군들과 맞서 싸우다 순절하였다. 구례군 향토유적 14호로 지정된 의병장 고광순(高光洵) 순절비가 바로 연곡사 앞마당에 있다. 피아골을 따라 핀 단풍이 말할 수 없이 진한 색채를 피워 올린다.
구례에서 보성까지 한시간을 달려 이동한 곳은 방진관(方震館). 방진은 당대 보성군수였던이순신 장군의 장인으로, 방진관은 근엄한 장수로만 여겨지는 이순신의 아내 방씨 부인의 향기가 느껴지는 따사로운 공간이다. 방진은 단순한 아내의 아버지를 넘어서 20세에 결혼한 이순신이 32세의 늦은 나이에 무과에 급제하기까지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스승이기도 하다.
방씨 부인이 불과 12세 때 화적들이 집안까지 쳐들어왔다.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며 화살이 떨어졌는데, 화살을 달라는 방진에게 베틀의 부속을 던지며 화살이 아직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한 기지를 부려 화적들이 스스로 물러나게 만들었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방진관에서 멀지 않은 열선루(列仙樓)는 그 유명한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 :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란 문구의 장계를 쓴 장소로 신흥동산공원의 정상부에서 발굴된 주춧돌을 기반으로 복원 중이다. 장계를 올린 장군은 나흘 후 8월 18일 명량에서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반격에 나선 왜적이 바로 이곳 열선루를 포함한 보성을 습격하였고 이 과정에서 열선루가 소실되었으니, 이곳 보성은 진도 못지 않은 명량대첩(鳴梁大捷)의 전적지인 셈이다.
남도마실길의 ‘전라도 천년기행’은 의향(義鄕)투어를 시작으로 23일 의예향(義藝鄕), 12월 7~8일 황룡강일원의 선비흔적 답사 총 3차로 마무리되지만, 이후에도 호남의 명소를 소개하는 여정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뻔한 관광지가 아니라, 호남의 숨겨진 명소와 맛집을 찾는 여행자라면 언제든 남도마실길의 문을 두드시려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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