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를 ‘신선 되는 책’ 정도로 오해하는 데에는 ‘장자 = 노자 = 무위사상 = 자연’이라는 편견이 깔려 있다. 하지만 노자가 말한 ‘무위’는 무지몽매한 백성을 다스리는 지배의 기술이다. 반면, 장자가 말한 ‘무위’는 험한 세상 살아가는 삶의 기술이다. 지배는커녕 차라리 피지배의 기술에 가깝다.
조금만 더 자세히 살펴보자. ‘무위’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글자 그대로 ‘아무것도 안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무위는 ‘억지로 하지 않는다’는 뜻일 뿐이다. 어차피 “사람으로 하늘을 이길 수 없다(추수편).” 상황을 받아들이고, 주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게 무위다. 바로 장자가 ‘인시(因是)’라고 이름 붙인 개념이다. 해석하면,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쯤 된다. 컵에 물이 반이 있을 때 어떤 이는 반이나 차 있다고 하고, 어떤 이는 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호들갑 떨 필요도, 지레 겁먹을 필요도 없다. 컵에 물이 반 있을 뿐이다. 그게 시작이다. 상황을 인정하고 주변을 인정하면, 그 다음엔 이용할 수가 있다.
전국시대 사람인 장자는 전쟁이 일상이던 세상을 살았다. ‘죽음’을 현실로 살면서 ‘행복’을 꿈꿨다. 그런 장자가 말한 “무위”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가 단순히 산속에 들어가 도 닦고 신선 되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이 그러하듯, 나 자신의 본성을 되찾고, 동시에 상대의 본성을 존중하자는 말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즉,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 속으로 뛰어 들어가 함께 공존하는 법을 터득하라는 메시지다.
그 중요한 방법의 하나로 장자가 제시한 것이 바로 ‘얽혀 살기(영녕)’이다. ‘영녕(攖寧)’은 “세상에서 노닐되 치우치지 않고, 남들을 따르되 자신을 잃지 않는” 길이다. 장자와 만나게 되면, ‘몸은 치열한 세상 속에 두되, 마음은 유유히 천하를 날아다니는’ 지혜를 얻게 될 것만 같은 구절이다.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 가운데 하나는, 특이하게도 《장자》의 메시지와 시사점을 설명하는 도구로써 그리스 로마 고전들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이래 그리스 철학의 전통과 스토아학파를 비롯한 로마 철학은 《장자》와 놀라울 만큼 비슷한 면이 많다. 이 책은 경계를 넘나드는 ‘장자’를 소개하는 만큼, 책 한 권에서 동서양 철학을 한 번에 만나보는 즐거움과 교양도 함께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