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휠러| 김문주 | 안그라픽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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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휠러는 영국에서 태어나 파키스탄과 서인도, 미국에서 성장한 다국적 문화 체험자다. 그는 70년대에 유행하던 ‘히피트레일’을 따라 유럽에서 아시아를 거쳐 호주까지 여행한 후 최초의 세계여행 가이드북인 『론리 플레닛』을 저술했다.
이후 30년간 그의 자유로운 여행과 기록 활동은 계속 된다. 그의 도전은 ’악의 축‘으로 분류되었던 나라들로 이어졌다. 그가 탐방한 9개 국가들(리비아·미얀마·북한·사우디아라비아·아프가니스탄·알바니아·이라크·이란·쿠바·)은 21세기 외교 분쟁의 중심지다. 그는 담담한 어조로 이들 국가를 직접 방문하여 느낀 정치·문화, 인권 수준을 자신의 저서 『나쁜 나라들』에 옮겨 담았다.
뉴스와 신문기사를 통해 ‘나쁜 나라들’을 접한 우리들이 가지는 의문은, 제시된 국가들을 나쁜 나라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다. 여행을 통해 만난 도시와 사람들의 기록을 정리한 토니 휠러의 기록은 그러한 문제에 대해 쉽게 접근하고 고민 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토니 휠러는 나쁜 나라들을 여행 하고 나선 소감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나쁜 나라들에 가고 싶다면, 당신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 할 것이다.”
그의 저서 『나쁜 나라들』에 실린 국가들 중 최고의 악평을 받은 4개의 국가를 선정해 그곳의 정치 문화 수준을 정리했다. 그 첫 번째 ‘나쁜 나라’는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 '리비아'다.
군사 혁명 40주년 기념 퍼레이드 광경 리비아는 군사적으로 많은 위협 요소를 가지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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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는 왜 ‘나쁜 나라’인가?
토니 휠러는 이른바 악의 계수(the evil meter)를 설정해 각 국가의 민주주의 수준을 평가 했다. 악의 계수는 3가지 기준으로 정리 된다. 이는 첫째, 자국민을 어떻게 다루는가? 둘째, 테러리즘에 관련되어 있는가? 셋째, 다른 나라에 위협이 되는가? 라는 의문이다.
“완벽한 국가라면 국민은 국가지도자에 대해 자유로운 이력을 피력 할 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민주적인 의사 표현이 어렵거나 국민의 삶이 주권자 혹은 독재자에 의해 휘둘린다면 이 부문의 평가는 낮아 질 수밖에 없다. <중략> 국민들 각자가 정부의 부당한 간섭 없이 스스로의 삶을 자유로이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이 합법적인 사업을 하거나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사 할 권리, 결혼 혹은 특이한 종교를 믿을 권리는 보장 되어야 한다.”-본문 361p
토니 휠러는 특히 리비아의 비정상적인 개인숭배, 테러리즘 지원, 자국민 탄압 사례를 비판하고 있다.
“실제암흑시절, 가다피는 언제나자신의 정적을 가차 없이 제거해 버렸다. 그중 가장 악명 높은 사례로 1984년 런던에서 벌어진 층격 사건을 들 수 있다. 가다피의 지원을 받은 리비아 출신 저격수는 런던 주재 리비아 대사관 밖 길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는 리비아 인에게 총격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런던 시민이 덩달아 희생당한 것이다. 1969년 트리폴리에서 축구 경기 도중 시위가 일어났는데. 경찰의 총성이 멈춘 후 최소한 20명의 사상자가 발견되기도 했다.” -본문 363p
"엄격한 이슬람 국가인 리비아에서는 술이 금지되어있다. -본문 17p
“이곳 여성들은 스스로 몸을 감싸고 다닌다. 하지만 더 특이한 점은 거리에서 여자들을 좀처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찻집, 인터넷 카페, 거리 등 공공장소를 돌아다니는 이들은 모두남성이다.” -본문 31p
토니 휠러는 여행하고 있는 국가의 개인숭배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서 국가 지도자를 선전하는 조형물들의 빈도를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가령 개인숭배가 극에 달한 북한,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국가들에서 과도한 국가 지도자 우상화 선전을 발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다피를 우상화한 선전물에 대한 묘사를 살펴보자.
“리비아에서는 어디서든 가다피의 초상화를 볼 수 있었는데. 이들은 수준이 높은예술 작품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치 광고판처럼 설치되어 있는 그의 초상화는 매 30초 마다 두 세가지 다른 이미지를 번갈아가며 보여 주었다.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초상화는 가다피가 팔짱을 끼고 위를 응시하고 있는 그림인데, 이 때문에 나는 항상 그의 코를 올려다보는 느낌을 받았다." -본문 28p
리비아의 독재자 이며, 독특한 행동으로 주목받는 '무암마르 가다피'ⓒ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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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가다피는 리비아에서 어떤 존재일까?
토니 휠러는 리비아의 독재자 가다피에게 따라 붙는 여러 별칭을 소개했다.
“‘지도자’, ‘대령’,‘아프리카연합의 아버지’, ‘혁명계의 기사’, ‘미친 개’ 혹은 간단히 ‘서민의 지도자’ 라 불리는 가다피의 초상이 전시된 리비아 혁명 갤러리에는 들어 갈 수 없었다. 가다피는 자신이 선호하는 혁명이나 독립운동을 절대적으로 지지했다. 그는 아일랜드공화국군을 지지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는데, 뉴욕과 보스턴에 거주하는 아일랜드 인 외에 아일랜드의 테러 활동에 가장 많이 기여한 이가 바로 가다피다.” -본문 23p
리비아에는 이른바 녹색서(green book)라는 독특한 책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바로 무암마르 가다피다. 그는 1969년 9월 국왕 이드리스 1세의 해외 순방 중 쿠데타를 일으켰고, 혁명평의회 의장으로 취임하여 정권을 장악해 군 사령관직을 거머쥐었다. 가다피의 혁명 이론을 정리한 이 책의 내용을 통해 리비아의 사회 분위기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녹색서』에 대해 휠러는 이렇게 설명한다.
“가다피는 수많은 독재자와 마찬가지로 자국 국민들을 무지몽매한 대상으로 보고 그들의 사상 의식을 지배해야 한다는 판단했다. 이는 마치 북한에 김일성 주체사상과 경제적 독립 및 복지를 위한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파하는 수많은 책이 편찬 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본문 29P
“『녹색서』는 남성과 여성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각기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긴 지면을 할애 하고 있다.” -본문 12p
가다피는 쿠데타의 정당성을 반미·반외세 정책과 직접민주정치에서 찾고 있다. ‘녹색서’는 이를 잘 정리 한 것이다. 또한 성차별을 정당화 하는 이론을 만들어 여성인권 탄압에 이용하고 있다.
가다피의 좌충우돌 외교정책, 비효율적 경제정책
리비아가 나쁜 나라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 원인 제공자가 최고지도자 가다피에게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자국민에 대한 강압 통치, 테러리즘 지원과 같은 악행을 저지른 그는 외교정책면에서 다양한 분쟁의 씨앗을 만들었다. 그는 1990년대까지 북아프리카 회교 국가들을 외교적으로 규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이는 실패한다. 가다피는 이후 아프리카 국가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그의 아프리카 포용 정책은 대량의 아프리카 난민의 이민을 부추겼다. 이는 북아프리카 지역에 큰 혼란을 불러오게 된다.
“1984년 모로코와의 논쟁을 비롯해 아랍 단체와의 부적절한 논쟁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카리스마 넘치는 괴팍한 대령이 이끄는 혁명적 리비아가 따분한 국왕이 이끄는 보수적인 모로코와 어찌 연맹을 맺을 수 있단 말인가?”-본문 24p
리비아의 시내 풍경, 외부 활동을 하는 여성을 찾기 힘들다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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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의 아프리카 포용정책은 대량의 아프리카 난민 유입을 부추겼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의 이민자들, 특히 말리, 수단, 니제르의 난민들이 구름처럼 리비아로 몰려들었다. 이어 카메룬, 차드, 가나, 기니, 나이지리아에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면서 이민을 환영하는 목소리는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2000년 벌어진 폭동으로 백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곧 불법 이민자에 대한 대대적인 추방 정책이 실시되었다.”-본문 34p
리비아의 경제 수준은 열악하다. 가다피는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확보 한 이후 모든 기업을 국유화 했다. 리비아의 경제를 지탱하는 자원인 석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계획 경제의 폐단인 관료주의와 부정부패를 낳았다. 테러지원국 혐의로 인해 가해진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조치와 국민들의 생산성 저하 현상을 불러왔다.
“싸구려 빌딩과 거리에 널려있는 쓰레기 때문에 리비아는 실제보다 훨씬 더 가난한 나라처럼 보인다. 사실 리비아는 영아 사망률과 문맹률을 낮추기 위한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그 결과를 보고 가다피의 성적표를 작성 한다면 다음과 같이 쓸 수 있을 것이다.
'열심히 노력은 하지만 주의력이 산만하며 주목 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본문 57p
변화하는 리비아, 그러나 아직 ‘나쁜 나라’
리비아 여성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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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현재 리비아는 테러리즘에서 한발 물러나 시장경제체제로 발을 들여 놓았다. 그러나 30년간 『녹색서』를 신봉해온 리비아는 그렇다할 변화를 보이고 있지 않다. 독재자 가다피는 사회 통제의 고삐를 놓지 않고 있다.
1985년 팔레스타인 극단주의자(그는 리비아의 자금 지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가 로마 및 빈 공항에서 벌인 탑승객 테러 사건, 1988년과 1999년 각각 발발했던 팬암 항공, UTA 항공기 폭발 사건 등으로 리비아는 국제적 ‘지명 수배자,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하며 1992년 UN은 향후 십년간 리비아를 나락으로 몰아넣은 제재 조치를 시행했다.
“제재 조치로 인해 피폐해진 국가 경제에 해법으로 가다피는 테러리즘 지원을 극도로 자제 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분적 시장 경제의 도입도 시도 하고 있다. 석유 산업이 리비아의 경제 기반인 이상 리비아가 경제문제로 인해 큰 혼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다. 문제는 비정상적인 개인숭배와 강도 높은 여성인권 탄압이다. 즉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한 리비아는 나쁜 나라로 남게 될 것이다.” -본문 356p
마지막으로 그가 정리한 가다피를 등장시킨 선전물 묘사를 통해 리비아의 민주주의 수준을 가늠해보자.
“마치 광고판처럼 설치되어 있는 그의 초상화는 매 30초마다 두세 가지 다른 이미지를 번갈아가며 보여 주었다.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초상화는 가다피가 팔짱을 끼고 위를 응시하고 있는 그림인데, 이 때문에 나는 항상 그의 코를 올려다보는 느낌을 받았다.” -본문 29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