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층석탑을 품은 분황사
아날로그 감성, 스탬프투어 - 경주4
2015년 06월 10일 23시 50분 입력

 

석탑을 품은 분황사

 

스탬프 찍는 곳 : 매표소 옆 문화해설사의 집

입장료: 성인1300원

 

분황사하면 분황사 삼층석탑이 떠오르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물론 이 석탑도 분황사 내에 있는 것이지만 분황사는 하나의 사찰이다.

634년(선덕여왕 3년)에 지어졌으며 원효, 자장 등 불교의 중심이 되었던 고승들이 거쳐간 사찰이다.

 

 

 

 

 

내부에 들어서면 석탑이 보이는데 이 석탑이 분황사 삼층석탑이다. 안산암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형태로 모전석탑이라고도 한다. 현재는 3층만 있지만 원래는 7층이나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층 몸체돌의 사방에는 쌍여닫이 돌문으로된 불상을 모시는 감실이 있고, 감실 양쪽으로는 인왕상이 새겨져 있다. 자연석으로 된 기단 위에는 네 마리의 석사자들이 있는 구조이다. 분황사 하면 바로 떠올리는 탑 답게 분황사 내부 중간에 위치해 있고 크기도 상당한 크기를 자랑한다.

 

 

분황사를 단지 삼층석탑만 떠오르기에는 아까운 곳이다.

삼국유사등 옛 기록을 보면 석탑 이외에도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있다.

 

 

석탑을 보고난 뒤 주위로 시선을 돌리면 석정이 보인다. 신라시대의 우물로 호국룡변어정(또는 삼룡변어정)이라고도 한다. 틀의 외부는 높이 70cm의 8각, 내부는 원형으로 되어있고 우물안에는 4각형의 격자가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이 우물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원성왕 11년(795년)에 당나라 사신이 와서 한달 간 머물다가 돌아 간지 하루 뒤 두 여인이 왕 앞에 나타나서 자신들은 동지,청지 두 연못에 사는 호국용의 아내인데 당나라 사신이 하서국 사람들과 자신들의 남편과 분황사 우물의 용 등 세 마리를 물고기로 변신시킨뒤 통 속에 넣어갔다고 구해달라고 했다. 왕이 하양관 까지 가서 물고기를 되찾아서 각각의 장소에 놓아주었다고 한다.

 

 

석정 옆에는 화쟁국사비부가 있다.

고려시대에 세워진 원효대사 비의 받침돌이다. 고려숙종 6년(1101년)에 건립되었으며 원효가 동방의 성인인데 불구하고 비석이나 시호가 없어서 비석을 세우게 했다. 현재 비석은 없어지고 밑의 받침만 남아있다.

 

 

두가지 외에도 분황사에는 재미있는 기록이 전해진다.

'천수대비 맹아득안' 이라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인데 경덕왕 때 한기리에 사는 희명이라는 여자의 아이가 5살 때 눈이 멀게되었다. 그래서 분황사로 가서 전각 벽에 그려진 천수대비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하여서 눈을 뜨게 되었다는데 이 노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릎을 꿇고

두 손바닥 모아

천수관음 앞에서 빕니다.

천개의 손, 천개의 눈

하나를 내어 하나를 덜도록

두 눈 다 없는 저에게

하나라도 주어 고쳐주시옵소서.

아아. 나에게 주신다면

그 자비심 얼마나 클 것 입니까.

 

이렇게 분황사도 불국사처럼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므로 햇빛이 많은 날에도 시원하게 있을 수 있다.

맞은 편에는 황룡사지도 있고, 위치도 시내 쪽에 있는 곳으로 다른 곳도 가면서 같이 가는 것도 좋은 여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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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민 pinkstar1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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