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통일에 관련된 두 사람의 안식처 김유신장군묘, 무열왕릉
아날로그 감성, 스탬프투어 - 경주3
2015년 06월 04일 23시 10분 입력

 

신라통일에 관련된 두 사람의 안식처  김유신장군묘, 무열왕릉   

 

 

 

김유신과 무열왕 김춘추

이 두 사람하면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삼국통일이 떠오를 것이다.

선덕여왕과 함께 통일 직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방송에서 많이 접할 수 있다.

비록 둘 중의 한명은 통일을 보지 못했지만 이 두 사람이 통일에 큰 영향을 준 사실은 변함이 없다.

재미있는 건 살아생전에도 함께 통일을 꿈꾸고 같이 행동했던 두 사람이 죽어서도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실이다.

 

 

김유신장군묘

 

스탬프 찍는 곳 : 매표소 옆 문화해설사의 집

입장료: 성인 1000원

 

 

김유신장군도 이순신장군처럼 왕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 한테 익숙한 존재이다.

신라의 삼국통일에도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표현되는데 예를 들면 2009년에 한 드라마인 선덕여왕에서도 김유신의 역할이 제법 컸던 걸 알 수 있다.

15세때 화랑이 되었고 그 후 신라의 장수로써 삼국통일을 지켜볼 수 있었다.

 

 

능은 밑둘레 50m, 지름이 18m, 높이5.3m로 아래쪽에는 보호석으로 둘러싸인 형태로 보호석에는 십이지신상이 새겨져 있다. 울타리처럼 둘러싸인 돌 안쪽의 능 밑부분 돌에 새겨져 있으니 잘 찾아보아야한다.

김유신장군묘는 입구에서 조금만 걸으면 금방 나온다. 묘 하나가 있고 묘를 둘러볼 수 있는 게 전부였지만 한쪽에는 뒤쪽 산과 연결되어있었다. 다른 곳처럼 전체적인 산책로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가는 길이 정말 예뻣다. 특히 벚꽃 피는 시기에 김유신장군묘 가는 길에 야시장이 열린다니 이 시기에 가게되면 김유신장군묘와 벚꽃, 야시장의 활기찬 분위기를 느껴보길...

 

 

무열왕릉

 

스탬프 찍는 곳 : 입구 옆 문화해설사의 집

입장료: 성인 1000원

 

 

무열왕 김춘추 하면 첫 진골 출신 왕과 김유신 장군처럼 신라의 통일하면 떠오르는 인물이다. 비록 통일은 다음 왕인 문무왕이 이루었지만 백제를 멸망시키는 등 통일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무열왕릉은 김유신장군묘처럼 언덕위에 있는 곳이 아니라 평지에 있다. 능은 밑둘레 114m, 높이 8.7m 로 큰 편이고 능 아래쪽은 자연석을 쌓고 드문드문 큰 돌로 받쳤다고 하나 보이지는 않는다. 김유신장군묘처럼 능을 둘러싸는 돌은 없지만 주위의 나무들이 능을 보호하는 것처럼 둘러싸인 것처럼 있다.

 

 

입구에서 들어가면 무열왕릉 전에 비석이 있는데 태종무열왕릉비로 무열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현재 비의 몸돌은 없어지고 거북이모양의 받침 돌은 용을 새긴 머릿돌만 남아있다. 그리고 능 바로 앞의 비석은 무열왕의 둘째아들 김인문이 쓴 “태종무열대왕지비”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김유신장군묘와 다르게 무열왕릉의 뒤쪽에는 산책로가 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여러개의 큰 능들이 있는데 이 능들은 서악리 고분군으로 누구의 무덤인지는 모르지만 무열왕릉 뒤쪽에 있는 걸로 봐서는 왕족으로 추정된다. 높이는 15m이고 밑둘레가 110~140m로 큰 규모로 이루어져 있다.

 무열왕릉 뒤쪽에 있어서인지 사람도 별로 없고 그늘이 있어서인지 여유롭게 걷기 좋은 곳이다.

김유신장군묘 근처와는 다르게 길 바로 옆에 능이 있었지만 능 내부는 김유신장군묘와 다르게 산책하기 좋게 만들어져 있었고 중간 중간 쉴 수 있는 벤치와 예쁘게 자란 나무가 있으므로 두 개 능을 비교하는것도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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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민 기자 pinkstar1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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