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몽환적인 작품세계로 유명한 영화감독 팀 버튼의 열렬한 팬이다. 그의 작품 하나하나가 필자에게는 소중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2012년도 애니메이션 작품인 <프랑켄위니>는 필자가 꼽는 그의 수작들 중 하나이다. 공상과학물의 고전인 『프랑켄슈타인』을 재해석한 기발함, 감독 특유의 기괴함과 사랑스러움이 돋보이지만, 무엇보다 과학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눈여겨볼 만하다.

과학을 사랑하는 소년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새로 부임한 과학교사 라즈쿠르스키 선생님에게서 과학에 대한 많은 영감을 얻는다. 둘도 없는 친구인 애완견 스파키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을 거둔 후, 빅터는 라즈쿠르스키 선생님이 죽은 개구리에게 전기 충격을 가해 근육이 반응하는 실험을 하는 것을 보고 스파키를 되살리기 위한 중요한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그러나 과학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위대한 힘이 가치를 학생들에게 불어놓고자 했던 라즈쿠르스키 선생님을 폐쇄적이고 완고한 마을 주민들은 그의 교수방식이 위험하다고 여긴다.

결국 라즈쿠르스키 선생님은 학교를 그만두지만, 떠나기 전에 빅터에게 과학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주옥같은 말들을 남긴다. “모두가 과학자란다. 우리 집 배관공조차도 노벨상을 받았단다. 너희 나라에서는 충분한 과학자가 배출되지 않는구나. 과학자들은 항상 많이 필요하단다.” “사람들은 과학이 머리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지. 그러나 과학은 가슴에서도 나온단다.” “과학이란 좋지 않은 것과 나쁜 것이 있단다. 그러나 과학은 양쪽 다 사용될 수 있지. 바로 이 점이 네가 항상 조심해야 하는 점이란다.” 라즈쿠르스키의 가르침을 마음속에 새긴 빅터는 결국 과학의 힘으로 스파키도 되찾고, 혼란에 빠진 마을에도 평화를 가져다준다.

유네스코에게도 ‘과학’은 태생적으로 중요한 화두였다.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의 준말인 ‘유네스코’(UNESCO)가 창설 당시 과학(Science)의 ‘S’가 빠진 ‘유네코’(UNECO)로 명명될 뻔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유네스코가 유엔체제 내에서 과학을 기관명에 포함시킨 유일한 기구가 되기까지는 평화를 위한 과학의 힘을 믿었던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위력을 본 국제사회는 세계 평화에 있어 과학의 핵심적인 역할, 그리고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했다. 1942년부터 소집된 연합국 교육장관회의(CAME)는 1945년까지 유네스코를 탄생시키기 위한 산파 역할을 담당했다. 연합국 교육장관들이 문화적 문제들과 과학적 관심사들로 토론의 폭을 넓혀갔음에도 불구하고, CAME의 정식 논의 안건으로는 이 회의의 명칭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교육 문제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줄리언 헉슬리, 조셉 니담 등 여러 과학자들이 기구의 명칭 및 활동에 과학을 포함시키고자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고, 결국 기구의 명칭은 ‘유네스코’로 확정되었다.

이후 헉슬리는 유네스코 초대 사무총장이 되었고, 니담은 유네스코 과학 분과의 초대 섹터장직을 수행함으로써 유네스코 내 과학의 입지를 다지는 데 기여했다. 이 외에도 국제지적협력기구(IIIC), 국제교육국(IBE)와 더불어 유네스코의 ‘전신’이었던 국제지적협력위원회(ICIC)의 구성원들 중에는 마리 퀴리, 알버트 아인슈타인 등 전설적인 과학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유네스코가 탄생한지 올해로 70년이 되었다. 국제수문학프로그램(IHP), 정부간해양학위원회(IOC), 인간과생물권사업(MAB), 국제기구과학프로그램(IGCP), 국제기초과학프로그램(IBSP) 등 현재 유네스코 과학 분야에서 운영되는 프로그램과 정부간 위원회들은 우수한 역량과 활동력을 보여주고 있다. 기실 최역점 분야인 교육, 대중적으로 인지도와 관심도가 높은 문화 분야에 비해 과학 분야는 역사적으로 일관되고 확고한 운영체계가 없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그러나 ‘유네코’에서 ‘유네스코’로 명칭을 바꿀 만큼 유네스코는 설립 초기부터 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세계평화를 위해 과학의 힘을 활용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표명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 구절처럼, ‘유네스코’라는 명칭이 바뀌지 않는 한 과학은 유네스코 안에서 세계평화를 위한 위력을 계속 발휘할 것이라 본다.     

[참고자료]

- <유네스코뉴스> 제632호. “톺아보는 유네스코 역사 12장면 1 - 인류의 이상, 유네스코의 탄생”

- <유네스코뉴스> 제687호. “‘주재관 서신 - ’UNESCO‘에서 과학(S)은 어디로 갈 것인가?”

- <사이언스 타임즈>. “유네스코의 과학자들 - 유네스코 설립과 시대적 배경”(http://goo.gl/a7uF0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