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연수 차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 머물고 있었다. 난생 처음 체험하는 유럽의 문화도 그렇지만 200여 개국을 관할하는 국제기구에서 겪었던 문화적 ‘다름’은 당혹스러우면서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유네스코에는 세계 평화를 위해 전 세계 2천여 명의 인재들이 모여 있다. 제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에게 의견을 개진하고, 협의를 통해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기까지의 과정은 상당히 지난한 작업이다. 이러한 장애물들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문화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이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필수이다. 회의 때 각 회원국 별로 자국, 또는 자국이 속한 문화권(아랍권, 유럽권 등)의 의사를 사업목표에 반영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같은 의미라도 자신들이 원하는 단어나 표현이 문서에 반영되지 않으면, 때로는 형평성에 대한 논란으로까지 번지기도 한다. 따라서 문서의 내용이 다소 장황해지더라도 회의에서 제시된 의견들을 가급적 모두 반영하고자 한다. 홍보사진을 찍을 때도, 모델들을 선택하는 데 인종적 비율을 철저히 고려한다. 국제행사를 치를 때, 참가자들의 문화적 배경과 기호(종교, 식단, 건강상의 특이사항 등)를 사전에 파악해야 한다. 기실 행사의 성패는 참가자들에 대한 이해도나 배려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다양성에 대한 이해는 비단 국제기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자크 아탈리의 ‘호모 노마드(Homo Nomad)’ 개념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지역적·국가적 경계는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고 있는 대중교통 및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각 민족이나 국가가 지니고 있는 수많은 문화의 파편들은 지구촌이라는 바다 속에서 부유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급격하게 개방되고 있는 현 시대에서 문화적 ‘다름’에 대한 호기심과 열린 마음은 필수이다. 문화다양성은 특정 민족이나 사회,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권리와 가치를 존중하기 위한 소중한 자산이다. 문화다양성을 통해 그 문화에 속한 개인의 상상력과 창의성이 증진될 수 있고, 문화 간 갈등과 대립을 극복함으로써 현 세대와 미래 세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달성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유엔은 매년 5월 21일을 ‘발전과 대화를 위한 세계 문화다양성의 날’(World day for Cultural Diversity for Dialogue and Development)로 제정해 문화다양성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특히 문화 분야를 관할하는 국제기구로서 유네스코는 문화다양성 보호, 문화의 획일화 및 종속화 방지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세계 문화다양성 선언」(Universal Declaration on Cultural Diversity, 2001년)을 선포하고,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 협약」(Convention on the Protection and Promotion of the Diversity of Cultural Expression, 2005년)을 체결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또한 문화다양성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서 ‘문화간 대화’에 주목하고 유엔에 권고해 ‘세계 문화 간 화해의 해(International Year for the Rapprochement of Cultures, 2010년)’과 ‘세계 문화 간 화해의 10년’(International Decade for the Rapprochement of Cultures, 2013-2022년)을 지정하는 데 일조했다. “20세기의 장애물 중 하나는 우리가 아직 각 나라의 특성을 지나치게 막연하고 편협한 시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일본을 일본인의 나라답게 만드는 것은 물론, 미국을 미국인의 나라답게, 프랑스를 프랑스인의 나라답게, 러시아를 러시아인의 나라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이처럼 무지한 탓에 모든 나라들은 서로를 오해하고 있다.” 일찍이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자신의 저서 『국화와 칼』을 통해 문화적 ‘다름’에 대한 열린 마음과 소통능력을 요구하는 시대적 당위성을 예견한 바 있다. 유네스코가 주목하는 문화다양성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모두를 위한 필연적 가치이다. 토머스 프리드먼의 말처럼 세계는 평평하지만, 여전히 다르다. [참고자료] - <유네스코뉴스> 제689호. “‘다름’과 소통하는 우리 시대의 만화경 「컬처 코드」” -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유네스코와 문화다양성』 (유네스코한국위원회, 2008) - 유네스코, 『유네스코 세계보고서: 문화다양성과 문화간 대화』 (유네스코한국위원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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