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미국 애니메이션 영화 <쿵푸 팬더> 시리즈를 다시 봤다. 2편까지 개봉된 이 영화는 주체할 수 없는 식탐과 고도비만 몸매를 지닌 자이언트 팬더 ‘포’가 쿵푸의 고수인 ‘용의 전사’로 성장해 자신이 살고 있는 ‘평화의 계곡’을 지켜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 <쿵푸 팬더 2>의 한 장면.

영화 <쿵푸 팬더>는 다양하고 특색 있는 캐릭터들의 활약을 통해 관객들에게 재미와 웃음을 주지만, 단순히 오락용 애니메이션으로 보기에는 심오하고 철학적이다. 대사부 ‘우그웨이’가 던지는 대사들이 특히 인상적인데, 그 중에서도 ‘내면의 평화(inner peace)’는 <쿵푸 팬더>의 1편과 2편의 전반을 아우르는 중요한 메시지이다.

1편에서 ‘우그웨이’는 꿈을 통해 악당 ‘타이렁’이 감옥을 탈출해서 평화의 계곡으로 쳐들어 올 것을 예견한다. 사부인 ‘시푸’는 당혹스러워하지만, ‘우그웨이’는 동요하지 않고 ‘시푸’에게 말한다. “생각이란 물의 수면과 같은 법. 동요하면 들여다보기 힘들지. 반면 차분히 진정하면 해답은 분명하게 보이는 법.” 어떠한 혼돈과 소용돌이 속에서도 내면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평화를 위한 길을 찾을 수 있음을 ‘우그웨이’는 일깨워준다.

내면의 평화를 찾는 여정은 2편에서 본격화된다. 혹독한 훈련과 실전을 통해 무술의 고수로 거듭난 ‘포’에게 ‘시푸’는 ‘우그웨이’의 마지막 가르침인 ‘내면의 평화 찾기’를 주문한다. 진정한 ‘용의 전사’가 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힘과 기술을 넘어, 외부의 어떠한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평정심과 고요함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포’는 물방울을 본래 모양 그대로 다루는 수련을 거듭하면서 내면의 평화를 찾는 법을 터득해가고, 결국 날아오는 대포알도 물방울처럼 만지고 옮기는 경지에까지 다다름으로써 자신의 마음 속 뿐만 아니라 ‘평화의 계곡’ 전체에까지 평화를 가져온다.

<쿵푸 팬더> 시리즈를 보면서 필자는 문득 ‘국제연합(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인 유네스코(UNESCO)를 떠올렸다. 유네스코는 교육·과학·문화 분야의 국제협력 촉진을 통해 세계평화와 인류발전에 기여하고자 1945년에 설립된 유엔 전문기구(UN Specialized Agency)이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세계평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열망이 고조되면서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이들 중 하나인 유네스코의 창설이 유독 의미 있는 이유는 세계평화를 향한 길을 인간의 마음속에서 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1945년 당시 영국 교육부장관이었던 엘렌 윌킨슨이 새로이 채택된 「유네스코 헌장」을 낭독하는 모습(출처: 유네스코영국위원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독일-이탈리아 3국 동맹을 지지하는 추축국 세력이 유럽 지역을 점령한 가운데, 1940년대 초 영국에는 연합국 7개국의 망명정부, 자유 프랑스 정부, 정치가, 외교관, 지식인, 피난민들이 모여들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이들 저명인사 때문에 영국 전역에는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위한 지적인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마침내 1945년 11월 16일, 전 세계 37개국 대표들이 런던에 모여 「유네스코 헌장」을 채택함으로써 유네스코가 설립되었다(헌장을 채택한 11월 16일이 유네스코 창립일이다).

▲1945년 런던에서 열린 유네스코 창립총회 모습(출처: 유네스코영국위원회).

「유네스코 헌장」의 서문(preamble)은 유네스코의 존재적 가치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영국 수상이었던 클레먼 아틀리의 연설에 포함된 내용에, 시인이자 헌장 작성에 참여한 아키볼드 맥레이시 미국 대표가 내용을 덧붙이면서 그 유명한 서문이 탄생했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속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제사회는 외적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평화가 공고해야함을 깨달았다. 헌장의 다른 부분에서도 이러한 유네스코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정부의 정치적·경제적 조정에만 기초를 둔 평화는 세계 국민들의 일치되고 영속적이고 성실한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평화가 아니다. 따라서 평화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인류의 지적·도덕적 연대 위에 평화를 건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 내 ‘관용의 광장(Tolerance Square)’에 있는 돌벽에는 「유네스코 헌장」이 각기 다른 10개의 언어로 새겨져 있다(출처: 유네스코).

올해 2015년은 유네스코가 탄생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평화는 내면으로부터 오는 것이니 밖에서 찾지 말라”는 석가모니의 말처럼, 유네스코는 반세기를 훌쩍 넘긴 기간 동안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해 인간의 내면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와 발전에 주력해왔다. 「유네스코 헌장」 서문 작성을 주도했던 아키볼드 멕레이시는 “교육을 통한 평화, 과학을 통한 평화, 문화를 통한 평화, 온 인류의 가슴 속 깃든 평화”를 역설한 바 있다. 유네스코는 ‘평화의 계곡’에 지키고자 오늘도 어김없이 내면의 평화를 위해 끊임없이 수련에 매진하는 ‘쿵푸 팬더’이다.

[참고자료]

- <유네스코뉴스> 제632호. “톺아보는 유네스코 역사 12장면 1 - 인류의 이상, 유네스코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