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에서는 300원이 조금 넘는, 1링깃으로 버스를 탈 수 있다. 1링깃으로 KL의 어지간한 거리는 다 간다. 다만, 문제는 어떤 버스는 한국에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 버스인데 반해 어떤 버스는 한국의 70~80년 대에나 나올 법한 구닥다리 낡은 버스라는 것. 내가 타 본 최악의 버스는 빗물이 새는 버스와 버스의 바닥 틈 사이로 도로가 보이는 버스였다! 

그러나 그 어떤 버스든 기본 요금은 모두 1링깃이다. 

METRO라는 버스 회사에서 운영하는 낡은 버스에는 버스 안내원 겸 매표원이 있고, RAPID라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버스는 시설이 좋으며 안내원이 없다. 안내원들은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다. 승무원이라기보단 그냥 표 끊어 주는 사람에 더 가깝다.

말레이시아 물가는 일반적으로 다른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 꽤 높은 편이다. 한국과 큰 차이가 없는 것들도 많다. 그러나 한국에 비해 확실히 싼 것이 있으니, 바로 교통비(기름값)와 서민 음식비. 

말레이시아 서민들이 주로 가는 마막집이나 노천 음식점에는 바나나 잎이나 종이로 포장돼 있는 '나시 레막'이라는 음식이 있다. 나시 레막은 밥에 '삼발'이라는 말레이시아식 소스와 멸치, 오이, 땅콩을 곁들인 음식인데 최하 1링깃(약 320원)까지 본 적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2링깃 이상이다. 말레이시아의 무슬림들이 사랑하는 치킨을 곁들이면 값은 좀 더 비싸진다. 한국으로치면 김밥 쯤 되는 국민 음식이나 한국의 김밥 한 줄 보다 양이 더 많으며 더 싸다. 

일반적으로 마막집에서 사 먹는 것이 한국 음식을 집에서 요리해 먹는 것보다 시간도 돈도 더 저렴하게 든다고 할 수 있다.

택시비 또한 기본 요금이 3링깃(약 1000원)부터다.

LRT라 불리는 전철 또한 구간별로 최하 0.7링깃(약 280원) 부터. 다만, 문제는 버스 노선이 다양하지 않고, LRT전철이 운행되는 구간은 그닥 길지 않으며, 택시는 교통체증이 심할 때 가까운 곳을 가려고 하면 절대 가지 않는다는 것. 물론 본래 요금의 2~3배 이상을 부르면 간다.

그런 말이 있다.

"KL에는 교통체증이 딱 한번 있는데, 출근 시간부터 퇴근 시간까지다."

터널, 없다. 

복잡한 교차로, 많다. 

목적지를 바로 앞에 두고 빙빙 돌아가는 길, 많다. 

산으로 길 내는 짓, 유명 관광지가 아니면 절대 안 한다. 

횡단 보도와 신호등, 턱 없이 부족하다.

중앙 분리대, 어떤 곳은 구간이 짧으나 어떤 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어 금방 맞은 편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아 걸어가다가는 일사병으로 쓰러지기 딱 좋다.

갓길, 있다 없다 제 맘대로다. 그런 길로 오토바이들이 끊임없이 불쑥불쑥 나타난다. 그래서 목숨이 두 개인 사람만 이런 길로 자전거 타고 다니길 권한다.

산 뚫어 터널 내고, 낡은 집들은 확 밀어버리고, 쭉 뻗은 넓은 도로를 내길 좋아하는 한국인들로서는 이해불가. 사시사철 더운데 왜 이런 답답한 짓을 하고 있는가 말이다. 릴렉스~. 그러나 이곳은 한국이 아니라 말레이시아다. 

좀 불편하고 위험하더라도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가..........라고 생각하면서 짜증이 좀 누그러지실 분도 있길 바란다.

재미있는 것은, KL의 중심을 관통하는 낡은 버스들을 타면 어떤 때는 시골 버스 분위기가 난다는 것이다. 낯익은 승객과 안내원이 반갑게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승객과 버스 운전사가 즐겁게 얘기를 나누는가 하면, 낯익은 승객들끼리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한다. 승객이 많아 짐 놓을 자리가 없을 땐 운전사가 운전석 근처 빈 공간에 짐을 맡아주기도 한다.ㅎ

언젠가 한번은 한참 러시 아워인 저녁 무렵에 버스를 탄 적이 있는데 워낙 사람이 많아 버스 문에 매달려 가는 사람까지 있었다. 정체 구간이 지나 버스가 막 내달리기 시작하는데 이따금 운전사가 급브레이크라도 밟을라치면 보고 있는 내가 다 조마조마하다. 그런데 그들에겐 이게 또 웃을 거리가 된다. 

손님 탈 공간도 모자라 위태위태하게 문에 매달려 가는데 웬 버스 안내원이란 말인가! 릴렉스~. 이 곳은 말레이시아가 아닌가. '버스 안내원'이라는 직업이 있음으로써 말레이시아는 실직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의 수가 더 줄어들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어떤 땐 안내원이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던지 아직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도 안 된, 자신의 어린 아이를 함께 버스에 태우고 일한다. 아이는 승객들 사이를 다시며 제가 직접 돈을 받고 표를 끊어 주기도 했다. 그러면 이런 게 또 얘깃거리가 되고 웃을 거리가 된다. 

한국의 70~80년대의 버스 모습이 바로 이러했을까.

그러나 이상하게도 깔끔한 새 버스에서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버스 안은 조용하고 깔끔하며,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와 쾌적하며, 사람이 문에 매달려 가는 미개한 일따윈 없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조용하다. 승객들은 각자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거나 게임을 하거나 검색을 하거나 메신저를 주고 받는다.

새 버스와 낡은 버스. 

20세기와 21세기가 공존하는 KL의 버스.

하루가 다르게 도시화와 기계화되면서 우리가, 그들이 얻고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비효율적이라고 낙인 찍혀 가차없이 폐기된 것들에게서 사람들은 뒤늦게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