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명한 겐팅 하일랜드를 간단다. 그런데 함께 가자고 권유한 일행들은 카지노 구경만 하고 올거란다. 그래도 공짜 구경이 어딘가. 따라나섰다. 겐팅 하일랜드는 쿠알라룸푸르 시내에서 북동쪽으로 약 40분 떨어져 있는 곳이다. 호텔과 카지노, 실외와 실내 놀이시설이 있는 테마파크다. 한라산보다 높은 해발고도 약 2000m에 위치하고 있어서 밤에 가면 시원하다 못해 서늘하게 느껴질 정도다. 산의 정상에는 대규모 카지노가 있는데 '구름 위의 라스베가스'라는 별명이 있다고 한다. 승용차는 한참을 구불구불한 가파른 산길을 달린다. 중간에 가다가 기어이 자동차에 탈이 나서 주저앉아 있는 차들도 있다. 쿠알라 룸푸르에서 겐팅행 직행버스는 KL 센트럴에서 타면 된다. 재미있게도 왕복 표는 편도의 요금의 두 배가 넘는다. 알뜰 여행자들은 편도로 끊으시는 게 좋을 듯. 드디어, 구름과 밤안개 사이로 엄청난 규모의 호텔들과 카지노가 모습을 드러낸다. 일행의 조언에 따라 준비해 간 긴 팔 옷을 꺼내 입고 차에서 내렸다. 아니나 다를까, 말레이시아에 와서 이런 '끔찍한 추위'(?)는 처음이었다.ㅎ 워낙 해발 고도가 높다 보니 그렇다고 한다. 그새, 나는 더위에 익숙해졌나 보다.
한국에서도 가본 적이 없는 카지노. 비교 대상이 없었기에 나는 휘황찬란하고 규모가 크긴 해도 카지노가 다 이런가 보다 했다. 그러나 일행의 해설인즉슨, 한국과는 비교불가한 규모란다.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카지노도 카지노지만, 나는 온갖 기계와 사람이 만들어 내는 인간군상들이 더 신기하기만 했다. 며칠 동안 도박장에만 있었던지 머리를 감지 않아 엄청난 양의 비듬이 짙은 색 옷 위에 눈처럼 하얗게 떨어져 있는 것도 모르고 도박에 열중하고 노인이 있는가 하면, 하루 이틀을 꼬박 샌 듯 눈이 충혈되고 몰골이 말이 아닌 사람도 적잖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생각보다 도박이 잘 풀리지 않은 듯 표정이 사뭇 심각하다. 그들이 저렇게 되기 전까지 한때는 돈을 잘 따던 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도박에 중독된 자들은 이런 쾌감을 초반에 좀 느껴 본 이들이 적잖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이 곳에 들어오면서 어떤 기대에 부풀어 있었을까. 어떤 길을 가 보기 전에는 자신의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없는 법. 그런데 우리의 인생은 안타깝게도 모든 선택을 동시에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다른 길을 가려면 또 다른 하나의 길, 혹은 여러 개의 길은 포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그래서 어느 시인은 못 가 본 길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노래했을 것이다. 실제로 더 아름다운 게 아니라 자신이 못 가본 길이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인간이 가지지 못했거나 가지지 못하는 것에 더 환상을 가지는 까닭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적당히 가졌다 싶으면 놓아줘야 할 때는 놓아주는 것이 더 아름답게 관계를 정리하는 지혜로운 방법이 아닐까. 포기해야 할 때를 모르고 무조건 열심히 부지런히 하기를 독려하는 사회에서 이런 아름다운 미덕이 자꾸만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깝다. 그러고 보니, 요즘 우리네 삶은 도박과 많이 닮아 있는 듯 싶다. 그러다가 기어코 오링이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도 생기는 것이겠지.
언제부턴가 사람의 인생이나 사회와 경제도 도박을 닮아간다. 심지어 땅에 기대어 농사짓는 사람들 또한 이 거대한 도박판의 말이 되어 버렸다. 아무리 풍년이 들고 농사가 잘 돼도 경제적으로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평생 농사의 지어온 나의 부모님이 그랬고, 이웃들이 그랬고, 귀농한 젊은이들이 그랬다. 동이 터올 무렵 우리는, 대부분은 심각한 표정으로 드물게는 기쁜 표정으로 붙박힌 듯 도박판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카지노를 나왔다. 그리고 겐팅 하일랜드라는 작은 카지노를 나와 훨씬 더 거대한 카지노로 향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돌.아.왔.다. 우리의 일상이 있는 바로 그 곳. 대박과 쪽박, 대박을 가장한 쪽박이 가득한 곳으로.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이 점점 초대형이 도박장이 되어가는 것도, 초대형 서바이벌 게임 세트장이 되어가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다. 이게 바로, 오늘 쓰는 여행기의 최대 반전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