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 않게 길거리를 오가는 릭샤에서, 수많은 백인과 흑인 배낭 여행자들에게서, 조지타운의 고색창연한 고전스러움 속에서 말레이시아가 아닌, 또 다른 제 3의 어느 나라에 와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페낭에서는 아무리 성격이 급한 사람도 그 기세가 한 풀 꺾일 것만 같다. 이 곳의 독특한 분위기와 나른함과 더운 날씨 때문에. 때론 매우 급한 성격이 불쑥불쑥 나오는 나 역시 그랬다.

쿠알라 룸푸르에 사는 나의 지인들 가운데서는 페낭에 다녀온 후로 페낭앓이를 하는 분들이 적잖이 있는데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일행과 함께 쿠알라 룸푸르 푸두 버스 터미널에서 밤에 출발하는 고속버스를 타고 페낭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5시경. 아직 페낭은 어두웠다.

KL에서 페낭으로 가는 교통 편은 많다. 버스, 기차(KTM), 비행기. 

버스 예약은 푸두 버스터미널에서, 기차 예약는 KTM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예매가 가능하다. 기차는 침대칸도 있으며 주말에는 예약이 꽉 차는 경우가 많으므로 가능한 며칠 전에 예매하는 것이 좋다.

새벽에 페낭 버스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타고 간 곳은 조지타운 게스트 하우스가 밀집되어 있는 곳이었다. 조지타운의 문트리 거리와 러브 레인 거리가 대표적인 곳이다.

다음 날, 나와 일행은 오토바이를 하루 빌려 페낭을 둘러 보기로 했다. 우리가 간 곳은 하루 대여하는데 50링깃, 보증금 100링깃이었는데 다른 대여점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싶다.

페낭의 거리는 온갖 교통 수단이 혼재되어 있다. 자전거, 오토바이, 릭샤, 버스, 택시.

우리가 오토바이를 달려 맨 먼저 간 곳은 콘월리스 요새였다. 그러나 한때는 좀 달렸다는 함께온 일행인 모터사이클 운전사 오빠, 차선이 한국과 반대 방향인데다 이제는 늙으시어 영 신통치가 않았다. 한국에서처럼 방향을 반대로 보고 있다가 갑자기 반대편에서 등장한 차를 보고 급 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 독자들은 페낭 여행 가실 때 이런 점, 주의 바란다.

이 자그마한 사건으로 인해서 나는 내 앞에서 운전하는 남자는 젊은 체 게바라가 아님을 알았다. 지금은 우리가 그저그런, 남미의 초라한 나라로 알고 있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의학도의 길을 가고 있었던 체 게바라. 당시 아르헨티나는 남미의 가장 잘 나가는 나라 중 하나였다. 부잣집의 똑똑하고 잘 생긴 도령으로 남부러울 것 없었던 그는 어느 날, 친구와 함께 남아메리카 일주를 결심한다. 모터사이클로. 이 여행을 계기로 젊은 날은 체는 사람의 몸을 치료하는 의학도의 길을 포기하고 세상을 치료하는 의사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바다 바로 앞에 있는 콘 월리스 요새는 의외로 한산했다. 이곳은 영국의 식민지 시절,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지은 거라한다. 이 곳은 입장료가 있다. 외국인이라 생각보다 비싸게 받는다. 워낙 유럽인이 많다 보니, 유럽 여행객 기준으로 받는 것일까. 좀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른다.

그러면 그렇지.

관광객이라곤 유럽인 몇몇과 우리 밖에 없다. 우리가 거기서 한 것이라곤 바다가 보이는 대포 앞에서 사진 찍고, 나무 그들 벤취에 앉아 페낭 전체가 와이 파이가 되는 구역이라는 사실에 감탄하고, 화장실 간 게 전부다.

다시 모터 사이클을 타고 무작정 달렸다. 목적도 없이.

유명 관광지가 의외로 이름 값을 못하고 바가지가 심해서 굳이 유명한 곳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듯 싶었다.

그러다 눈에 띈 건물이 있었다. 높은 탑이며, 건물 양식이 페낭의 여느 건물들과는 달랐다. 어렵게 입구를 찾아 들어가 보니, 태국식 절이다. 

태국의 전통 건물들은 태국의 문자를 닮아 있다. 

페낭은 태국과 매우 가깝다. 그래서 일까. 쿠알라 룸푸르에서는 보기 힘든 태국식 절이 꽤 눈에 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인이 많이 살고 있어 중국식 절도 있으며 이슬람 사원도 있다.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르고 찾아 들어간 곳은 큰 와불상이 있는 절이었다. 절의 입구는 용 네 마리가 지키고 있다. 말레이시아 용 두 마리와 태국 용 두 마리.

이 거대하면서도 한없이 편안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와불상은 영국의 식민 통치에서 해방 기념으로 태국이 말레이시아에 선물한 불상이라고 한다. 

공식식적으로는 이슬람교가 대부분인 말레이시아가 오랜 불교 국가 태국의 종교적 상징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화합을 상징하는 건축물과 예술품들을 받아들인 것이다. 또 식민지 경험이 없는 태국은 오랫동안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들어 거대한 평화의 상징을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이웃 나라를 자신의 방법으로 축하해 준 것이다.

진정한 종교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이 누워있는 금빛 부처상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와불상이라고 한다. 깊은 생각에 잠긴 것도 같고 아무 생각 없는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 같기도 한 부처상 앞에서 우리나라 염불과는 좀 다른 음악을 듣고 있으니 나 또한 한없이 마음이 평화로와지는 듯했다.

페낭의 수많은 해변 도로들과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수많은 길들을 지나 나와 일행이 함께 함 여정의 끝은 페낭 힐이었다. 감히 말하건대, 페낭에 와서 페낭힐을 가보지 않았다면 페낭의 반밖에 못 보았다고 말하리라. 페낭 여행의 핵심은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오래된 식민지 시대의 건물 사이로 릭샤가 아무렇지 않게 다니는 조지타운과 페낭 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정상에 서면 시원하기까지 한 페낭 힐.

시간적인 여유가 된다면 산행을 했으면 더 좋았겠으나 일정이 빠듯해 우리는 정상까지 몇 분 만에 간다는 레일을 타고 가기로 했다. 왕복 표값은 한국돈으로 약 만 원이다. 함께 간 일행은 말레이시아의 물가에 대해 기어이 한 마디 한다. 

산정상까지 직선으로 뻗어 있는 철로는 오직 오르막과 내리막만 있었다. 때로 아찔할 정도의 급 경사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렇게 너무나 쉽고 빠르게 올라온 페낭힐 정상. 전망대로 가니 페낭 섬이 한눈에 들어 온다. 

이 곳에 안 왔으면 어쩔 뻔 했을까. 노을에 물들어 있다가 차츰 어두워져가는 페낭을 보면서 다음에 올 때는 좀더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 산행을 하면서 직접 페낭 힐을 경험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페낭은 미식가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말레이시아에서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주가 바로 페낭이다. 그래서 페낭의 음식들은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다. 노천 음식점부터 고급 레스토랑까지 선택의 폭 또한 다양하다. 

페낭 힐을 내려온 뒤, 우리는 길거리 어느 노천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메뉴는 페낭의 대표 음식 가운데 하나인 '락사'라는 국수와 딤섬(만두). 사람들이 붐비는 곳으로 무작정 찾아 갔더니 맛이 일품이다. 아마 이런 기준으로 노천 음식점을 찾아가면 페낭의 어느 곳이든 맛있는 집일 것이다. 

양이 엄청 많은 커피 또한 맛있다. 페낭은 커피까지 맛있다. 화이트 커피는 페낭의 명물이기도 하다.

다만 너무 달고, 너무 양이 많을 뿐이다.

다음 날, 페낭 여행을 마무리하면서도 못내 아쉬웠다. 다녀 오신 분들이 얘기해 주었던 바투 페링기 해변과 나비 농장 등은 결국 못 보게 되었으니. 그러나 또한 그 분들은 말하지 않았던가. 한 번 가도 좋고, 두 번 가도 좋고, 세 번째로 가도 좋더라고.

그렇다. 페낭은 그런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