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행과 함께 방콕에 내렸을 때는 시위가 한창인 때였다. 적잖은 한국인들이 이유없이 다시 한국으로 쫓겨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들 또한 적잖이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새벽이어서인지 조용했고, 생각보다 입국심사가 까다롭진 않았다.

방콕의 중심가와 꽤 떨어져 있는 작은 호텔이라 그런 것일까. 숙소에서의 아침 또한 시위 때문에 혼란스럽다는 나라가 맞나 싶을 만큼 평화로워 보였다. 호텔에 딸린 작은 까페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먹고, 인근의 길가 노점 음식점은 한국의 여느 시장처럼 시끌벅적했다.

그렇게 나와 일행은 후알람퐁 역에서 기차를 타고 태국을 거쳐 말레이시아로 왔다. 

한국으로치면 옛 비둘기호 쯤 되는 속도일까. 기차는 느리게 느리게 태국의 많은 도시와 소도시, 시골을 지났다.

방콕을 벗어나자 전혀 다른 풍경들이 펼쳐졌다. 길가에서 풀을 뜯는 소들과 아직 한국의 옛 달동네나 빈민가와 다름없어 보이는 집들과 야자수, 그리고 끝없는 논과 밭.....

방콕과 너무나 다른 모습들. 

그리고 지난 1월, 최근에 다시 태국의 푸켓과 끄라비에 가볼 기회가 있었다.

거기서 만난 분과 태국의 성적인 개방성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때론 퇴폐적이고 문란해 보이기까지 하는 태국의 분위기에 대해 좀 낯설고 어색해 하자, 푸켓을 자주 오가는 그 분은 이렇게 해야 장사가 되니까 그런 것 뿐이라고 언급해 준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다는 뜻이리라.

흔히, 성적으로 보수적인 척 하길 좋아하는 한국인들도 태국에 오면 거의 빠지지 않는 관광 코스가 바로, 트랜스잰더 쇼이다. 듣자 하니, 워낙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아 쇼를 마칠 때 쯤엔 아리랑 노래까지 불러주는 쇼도 있단다. 이 또한, 수요가 있으니까 공급이 있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왜 트랜스젠더 쇼나 게이 쇼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필수 관광 코스가 되다시피한 것일까? 물론 한국인만 그렇지는 않다. 일단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니까.

그러나 일견, 한국인들이 관음증적인 욕구와도 관련있어 보이는 것 또한 사실. 좀 더 까놓고 말해서,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된 관음증적 욕구충족이랄까.

여기, 서로 전혀 무관해 보이는 자료들이 있다.

1. 태국이 관광대국이긴 하나 아직도 직업비율을 보면 농업에 종사하는 비율이 약 40%쯤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한국인들의 눈엔 찢어지게 가난하다.

2. 트랜스젠더 쇼는 태국의 주요 관광 상품 중 하나로 나날이 번성하고 잘 나간다. 

3. 태국의 정치 상황은 총리직에서 물러난 지 한참이나 된, 탁신이라는 사람을 지지하는 친탁신 세력과 반탁신 세력과의 갈등으로 혼란스럽다. 그래서 정치적 갈등으로 시위가 심심찮게 일어난다. 

탁신 전총리는 부정부패 의혹을 받고 있음에도 재임시절, 친서민 정책으로 서민들과 하층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쿠데타로 인해 그는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망명생활을 하게 된다.

얼핏 보기에 이 세 개의 사건은 그닥 관련이 없어 보인다. 

나 또한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태국 하면, 떠올리게 되는 보통 사람들의 연관 검색어를 보자. 세계적 관광명소와 함께 떠올리게 되는 게이쇼, 트랜스젠더쇼가 아닌가.

왜 그곳은 유독 이런 사람들이 많은 것일까. 나 또한 갖고 있는 의문이었다.

어쩌면 유전적인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환경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알게된 놀라운 사실 하나. 태국의 하층민들 가운데서는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일부러 아들 중 남자가 마지못해 성전환을 해서 '쇼걸(?)'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공급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급은 확실해서 수입 또한 확실하다.

트랜스젠더 쇼를 구경하고 온 한국인들은 누구는 진짜 여자보다 더 예쁘다, 누구는 몸은 여자인데 목소리는 남자다, 또 누구는 아직 성전환 수술을 안 했다는 등의 얘기를 하곤 한다. 

본다는 것의 폭력.

그렇다. 우리는 시나브로 본다는 것 자체가 폭력이 될 수도 있는,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내 돈 내고 관광코스에 가서 트랜스잰더 쇼 좀 봐 주고 왔는데 그게 어때서.

그러나 그 "쇼(구경, 바라봄)"에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어쩔 수 없이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벌어들인 수익은 태국의 관광 수입에 포함이 될 것이다. 그의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될 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렇다. 본다는 것은 때론 폭력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쇼는 주요 관광 상품의 하나인 것 또한 분명하다. 

예전에 연예인들의 섹스 비디오로 시끄러운 적이 있었다. 대학 시절, 주위의 남자 친구들과 선후배들은 몇몇을 빼고 거의 다 이 몰카를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같은 과 동기 중 여자애 하나도 이 비디오를 보았단다. 담배까지 피는 그 친구는 여자라고 그런 거 안 보는 애들이 더 이상하단다. 

그 때 나 또한 이 친구의 의외의 면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당시엔 여대생이 담배를 피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워야 하고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숨겨야 하는 현실의 서글픔(?)을 토로하기도 했던 친구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참고로 나는 운동권 페미니스트 언니들의 과격함을 좀 무서워했던 부류 중 하나다. 화장도 안 하고 남자처럼 옷을 입어야 같은 편이라고 인정해 줄 것 같은 그들의 분위기가 왠지 아닌 거 같았다.  

그럼에도 여성으로서 내가 섹스 몰카의 피해자가 됐다고 상상해 본다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가 뭔지 안다면 답은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만약 이런 일이 만약 조선시대에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이토록 폭력적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물론 부부간에 성행위라고 가정했을 때, 그건 그냥 일회용 가십거리밖에 안된다. 허긴 요즘엔 일부러 이런 사람들도 있다니. 뻔뻔스러움의 극치라 할 만하다. 관음증과 노출증의 절묘한 결합.

나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이런 비디오를 보지 않는다. 당사자가 수치스러워 하고 의도하지 않은 사생활을 노출시키고 확산시키며 입방아 찧는 일 자체가 폭력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품질과 빠르기를 자랑하나, 정작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인터넷의 역작용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인터넷은 심각한 범죄의 온상이 되고 민주주의를 그 뿌리부터 흔들어 버릴 흉기에 불과해진다.

새삼, 트랜스젠더 쇼와 한국인의 이런 관음증적 욕망과 무관하지 않음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 또한 알게 모르게 직간접적 폭력에 가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