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늘 까치집을 품어주던 아름드리 나무야.

내가 걸어서, 자전거로 수없이 오갔던 길들아.

그리울 거야, 많이.....

내가 머물던 작은 옥탑방의 짐을 다 빼고 나서 창 밖을 한참 바라보았다. 한동안 봄을 환하게 밝혀주던 벚꽃은 스러지고 봄은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방은 비좁고 작았으나 창밖은 더없이 넓고 푸르렀다. 하루가 다르게 그 푸르름은 더욱 더 무르익고 있었다. 

2014년, 유월 초의 어느 오후. 

대학 캠퍼스에 속한 숲의 끝자락에 있는 작은 집에서 나는, 한동안,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만으로 37년, 나는 거의 평생을 경산이라는, 별볼일 없는 이 자그마한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한 곳에서, 더구나 번화한 도시가 아닌 곳에서 거의 평생을, 혹은 아주 오래 머문 사람들이 외부 세계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호기심과 두려움.

물론 대개는 이 두 감정이 공존한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는 젊을수록 호기심이 더 강하고 나이가 들수록 두려움이 더 강한 듯싶다.

나 또한 그러해서 말레이시아로의 이주를 결정하기까지 많은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나 이대로 썩은 물처럼 고여 있을 수만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더 늦기 전에 더 넓은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해외 여행자들이 그렇듯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반도라고는 하나, 사실상 섬이나 다름없는 대한민국의 모든 여행자들의, 모든 여행의 출발점.

난생 처음 타본 비행기에 올랐을 땐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땅은 작아지고, 나는 날아 올랐다. 비행기는 앞으로 질주하면서 때론 머리가, 때론 꼬리가 들리기도 했고, 때론 옆으로 기울기도 했다.

그렇다. 내가 타 본 그 어떤 교통수단보다 생소하고 신기한 교통수단에 나는 몸을 싣고 있는 것이다!

저 아래 깊은 어둠 속 어디선가 이따금 천둥번개가 밤하늘을 환하게 밝히기도 했다.

폭죽.

환영하는가.

나도 환영한다.

방콕에 도착하니, 새벽이다.

그렇게 나는 방콕에서 말레시아의 쿠알라 룸푸르로 왔다. 야간 열차를 타고.

30분을 달려도 끝없이 펼쳐진 논들과 논 사이의 야자수는 익숙하면서 낯설었다. 어릴 적부터 수없이 보아온 논이었으나 왠지 낯선 논이었다. 

그렇다. 드디어 나는 "낯선" 이국 땅에 발을 디딘 것이다. 온갖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인종들과 다양한 언어들. 낯선 음식들과 낯선 풍경들과 낯선 냄새들.

흔히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곤 한다. 우리는 외국이나 낯선 곳을 여행할 때는 미리 갈곳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이나 책, 다녀와 본 사람들의 말을 통해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간다. 

다른 모든 정보가 그렇듯, 여행 안내서마저도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글쓴이가 직접 경험하고 알아낸 사실들을 알려주는 안내서가 있는가 하면, 다른 정보들을 모아 대충 짜깁기한 것들도 있고, 많은 사진과 볼거리들을 제시하면서 가보기도 전에 그곳에 대해 쉽게 짐작할 수 있도록 하는 안내서가 있는가 하면, 최대한 이런 것들은 자제하고 여행자들이 안내서에 쓰여 있는 것들을 몸소 겪어보길 권장하는 안내서도 있다. 

그래서 여행안내서 또한 여행 목적에 따라 각기 다른 것들이 필요한 것이리라. 관광을 하기 위해 가는지, 유흥을 즐기기 위해 가는지, 가난한 여행자로서 사람과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가는지, 잠깐 휴양을 하기 위해 가는지.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런데 공교롭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듯 싶다. 간혹 이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라 해도 돈과 물질적 성공을 바라는 안내서에나 관심을 가질 뿐. 

그리고 몹시 드물지만, 어떤 사람들은 삶의 목적이나 이유에 대해 생각하면서 먼저 살다간 사람들의 글이나 세계 여러 민족들이 삶을 바라보는 방식, 다른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궁금해 하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모든 위인전과 종교의 뿌리도 결국 삶이라는 여행의 안내서가 아닐까? 때론 그 용도가 심각하게 변질되긴 해도.

지금은 말레이시아.

그러나 언젠가는 태국이나 제 3국의 엉뚱한 곳에서 여행기를 쓰고 있을지 모르겠다. 국제 떠돌이로서, 정착자로서.

내가 앞으로 쓰게 될 글들은 정보 전달 위주의 글이 되기보단 내가 여행하고 생활하고 겪으면서 느낀 단상 위주의 글이 될 듯 싶다. 그러니까 내가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쓰되, 독자들이 가기 전에 미리 상상해 보고, 몸소 겪으며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여행기가 되길 바란다.

이제, 나의 긴 여행과 함께 글쓰기라는 또 하나의 고된 여행 또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