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동 벼룩시장

플리마켓의 유래를 아는가. 파리의 한 넝마주이가 고물을 파는 노점상의 진열대를 보며 ‘이것 보게, 여기선 벼룩(flea)까지 팔고 있네!’라고 말한 것이 계기가 돼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유래에 걸 맞는 벼룩시장이 한국에도 있다. 바로 황학동이다. 동묘앞역 3번 출구, 교복을 입은 학생부터 머리가 하얗게 샌 할아버지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어떤 물건을 찾아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란 호언장담을미리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서부터 벼룩시장입니다’라는 표지판은 없지만, 인파를 따라 몇 걸음 걷다보면 어느새 시장 안에 들어서 있다. 길 양쪽으로 죽 늘어선 진열대에는 규칙 없이 온갖 종류의 물건들이 올라와 있고, 상인들은 땡볕 아래에서 땀범벅이 된 얼굴로 손님을 끌기 위해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청바지 한 장에 6000원!”어 디선가 솔깃한 외침이 들려왔다. 소리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 옷 구경을 하고 있자, 한 쪽에선 주인장과 손님의 밀당이 시작됐다. “사고는 싶은데 이거 괜찮은 거예요”라며 주저하는 손님. 그러자 주인이 목소리를 낮춰 “두 장 사면 만원에 드릴게요”라며 구매 욕구에 불을 당긴다. 

황학동 벼룩시장

발걸음을 옮겨 전자제품 판매가 한창인 곳으로 갔다. 수많은 종류의 스피커, 휴대전화, CD플레이어, TV가 한데 몰려 있는 진풍경은 꼭 사지 않더라도 구경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었다. 구경을 하다가 조금 힘들어질 때쯤이면‘ 꽃돼지네’라는 간판이 시야에 들어온다. 분식을 파는 이곳에서 허기를 달래보자. 반대편 동묘 담장 옆으로도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족발, 부침개 등 5000원 이하의 음식들이 메뉴판에 가득했다. 한 가게 앞에서는 낮인데도 막걸리를 한 잔 걸치는 아저씨들의 걸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좌판이 펼쳐진 길을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각종 옛날 음악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들어서게 된다. 음악 CD‘ 세 개에 만원’이라고 써 붙인 진열대를 뒤적이고 난 뒤, 가게 안쪽에 수북이 쌓인 LP판을 발견했다. 이제는 주변에서 찾기 힘든 LP판, 그 LP판을 손님에게 파는 상인의 모습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이 판을 보시면 보관 상태가 아주 예술이야. 이렇게 껍데기까지 깨끗한 거 어디 가서 찾기 힘들다니까.” 너스레를 섞어가며 화려한 말솜씨를 뽐내던 주인아저씨는 결국 CD 세 장보다 비싼 가격에 판을 파는데 성공했다.

과거로의 여행은 계속됐다. ‘십전’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지폐와 5공화국 출범기념 주화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부모님 세대 때 인기 있었을 싶은 못난이 인형도 있었다. 분명 고층의 주상복합 아파트가 주변에 보이는데도 이곳만큼은 과거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었다.

가는 길_ 1,6호선 동묘앞역 3번 출구로 나와서 동묘까지 가거나, 2호선 신당역 11번 출구로 나와서 청
계천을 따라 둘러보면 도착할 수 있다.
영업시간_ 토, 일요일이나 공휴일 늦은 아침부터 오후 6시까지


핫한 에너지: 쿤스트할레 플리마켓

쿤스트할레 플리마켓

심장을 간지럽히는 강렬한 비트의 클럽 음악이 컨테이너 박스 안을 가득 채웠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바비큐 그릴 향. 코가 반가운 듯 반응했다.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미로처럼 이어놓은 구조는 눈길을 사로잡았다. 강남의 오피스텔과 고깃집 사이에 우뚝 서 이질감을 잔뜩 내뿜고 있는 이 곳, 쿤스트할레를 지난 7일 토요일 저녁에 찾았다. 

‘아트홀(art hall)’을 뜻하는 독일어 쿤스트할레(Kunsthalle)는 본래 2000년 베를린에서 시작된 서브 컬쳐 아티스트들의 모임 ‘플래툰’에 의해 세워진 문화공간이다. 2009년 서울 강남에 등장한 플래툰 쿤스트할레는 미술관, 바, 공연장, 파티장, 벼룩시장 등 다채로운 공간을 제공하는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다. 황학동 시장이 벼룩시장의 원조라면, 쿤스트할레 나이트 플리마켓은 젊은이들을 위한 가장 현대적인 벼룩시장이다. 쿤스트할레 플리마켓은 매달 첫째 주 토요일에 열린다. ‘나이트’ 플리마켓인 만큼 밤 8시에 열린다. 

개장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으나 상품은 이미 진열돼 있었고 거래가 한창이었다. 플리마켓에 셀러로 참가할 경우 2만원의 참가비가 필요하지만 일반인은 무료입장이다. 이곳에서는 셀러도, 구매자도 모두 20-30대 젊은이. 황학동 시장의 BGM이 ‘골라 골라 막 골라’였다면, 쿤스트할레의 BGM은 홍대에서 자주 들었던 클럽음악이다.

1층 매장 한가운데서 열린 경매

쿤스트할레 플리마켓은 패션잡지「블링」과 공동주최하는 시장인 만큼 패셔너블한 아이템이 많다. 1층엔 빈티지한 구제 아이템부터 반짝이는 가을 신상품까지 옹기종기 진열돼 있었다. 가격은 주로 1~3만원대. 재킷이나 신발은 5~7만원까지 나가기도 한다. 황학동 시장처럼 적극적인 호객행위는 없었지만 셀러들은 연신“ 착용해보세요”라고 외치며 물건을 판다. 이날의‘ 잇(it)’아 이템은 라이더 재킷과 스냅백. 가을을 맞아 다양한 디자인의 라이더 재킷이 놓여 있었고, 올 여름 유행한 스냅백은 여전히 불티나게 팔렸다.

1층 매장 한가운데에서 경매가 시작됐다. 내놓인 아이템들은 저마다 사연을 갖고 있었다.‘ 살쪄서 더 이상 못 입는다’는 주인의 등살을 못 이겨 나온 옷도 있었다.“ 사실 블랙 의상을 입는 이유는 때가 안 타니까 세탁비를 줄일 수 있어서죠”라며 재치있는 진행자의 멘트가 흘러나오자 참가자들의 입가엔 웃음이 걸리고, 이내 손에 든 지갑이 활짝 열렸다. 경매는 1층에서 이뤄지지만 옥상까지 층마다 스피커를 통해 생중계되므로 다른 곳을 구경하다 맘에 드는 상품이 있다면 달려 나와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상품은 대부분 1천원에서 시작해 대략 3만원에 팔렸다.

경매장 옆엔 간단히 목을 축일 수 있는 모던 바가 자리 잡고 있다. 4층까지 계속되는 시장 길을 따라 컨테이너 박스의 옥상으로 올라가면 루프탑 파티장이 준비돼 있다. 어느 정도 쇼핑이 끝나는 늦은 밤, 이곳 루프탑에서는 애프터 파티가 열린다. 생맥주부터 데킬라까지 진열된 미니바와 푹신한 카우치가 준비된 루프탑은 쇼핑으로 지친 몸에 다시금 에너지를 불어넣어주는 파라다이스다. 클럽음악에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핫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는 공간, 플래툰 쿤스트할레. 이곳의 유니크함은 젊은이들의 강렬한 에너지와 흥겨움이 더해져 더욱 빛을 발한다.

시간_ 매월 첫째 주 오후 6시~10시(동절기), 오후 8시~자정(하절기)

이명희 학생기자(상명대 영어교육과4, jamie42@naver.com)
이승연 학생기자(홍익대 판화과4, oqagreen90@naver.com)
허재영 학생기자(이화여대 경제학과2, hjy120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