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탕달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다. 이 이름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1979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그라치엘라 마게리니라는 정신과 의사이다. 프랑스 작가 스탕달이 피렌체에 있는 산타크로체 성당을 방문한 뒤 감상을 그의 책에 적은 데서 비롯한 것이다.

"피렌체에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나는 황홀했다. 게다가 조금 전에는 위대한 예술가들의 무덤가에 있지 않았던가! 숭고한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 나는 그 아름다움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아니 손끝으로 만져보았다. 예술품과 열정적 감정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초자연적 느낌들이 충돌하는 감동의 물결이 나를 휘감았다. 산타크로체를 나올 때 나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온몸에서 생기가 빠져나간 듯했다. 나는 발을 내딛고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스탕달 <로마, 나폴리, 피렌체 (1817)>

이러한 현상을 일컬어 ‘스탕달 신드롬’이라 한 것이다. 그렇다면 스탕달은 무엇을 보고 그토록 감동을 받아 다리에 힘이 빠지며 쓰러지려 했을까? 혹자들은 당시 그곳에 전시되고 있던 귀도 레니(Guido Reni, 1575~1642)의 작품<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Portrait of Beatrice Cenci, 1662)>을 보고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이 그림에 대한 스토리는 이렇다. 16세기 이탈리아에 프란체스코 첸치라는 악역무도하고 방탕한 귀족에게 베아트리체 첸치라는 딸이 있었다. 14세가 되었을 때 베아트리체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해 있었다. 그러자 프란체스코는 그녀를 아무도 보지 못하게 저택의 한 방에 가두어 놓고 자신의 딸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겁탈했다. 아버지에게 강간 당한 베아트리체는 깊이 앙심을 품고 언젠가는 복수하리라고 마음속으로 맹세했다.

1598년 9월 9일 밤, 그날도 역시 지옥 같은 밤을 보낸 베아트리체는 아버지가 늘 마시던 술에 몰래 아편을 탄다. 짐승만도 못한 프란체스코는 딸의 육체를 범한 뒤 베아트리체가 건네주는 술을 한 잔 마시고 곧 잠에 빠져들었다. 아버지가 잠이 들자 베아트리체는 그녀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는 계모, 오빠와 함께 프란체스코를 망치로 때려 숨지게 했다. 그리고 시체를 집 옥상에서 정원의 무성한 나무 아래로 던져 사고사로 위장했다. 하지만 프란체스코의 죽음에 대한 진상은 곧 밝혀졌고 이들은 모두 체포되고 말았다. 그 가정의 내막을 잘 알고 있던 동네 주민들은 정상을 참작해 석방해달라고 교황에게 탄원서를 냈지만 첸치 가문의 재산을 몰수할 야심을 가진 교황 클레멘트 8세는 이 요구를 묵살하고 첸치 가족 모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다음 해, 베아트리체의 처형 날이 도래하자 로마의 산탄젤로 다리 위에는 단두대가 설치되었다. 슬프고도 괴이한 이 비운의 절세 미녀의 사연을 들은 수많은 구경꾼들이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다리 위로 모여 들었다. 오빠 자코모가 첫 희생자였다. 그는 사지가 찢기는 형을 받아 몸이 4등분으로 나뉘어져 그 사체가 네거리에 걸렸고, 계모 역시 참수형을 당했다. 그리고 남은 이는 베아트리체, 하얀 모포로 몸을 감싸고 역시 하얀 모자로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던 눈부신 머리카락을 가린 그녀가 걸어 나오자 여기저기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비록 살인자였지만 그녀는 품위를 잃지 않았다. 

베아트리체는 조용히 단두대에 올라 잠시 기도를 드린 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날 선 도끼 아래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불과 22세, 8년 동안 아버지에게 겁탈을 당하며 성에 갇혀 지낸 가련한 여인의 마지막 순간에 시민들은 애도와 함께 연민을 쏟아 내었다. 당대 최고의 화가 귀도 레니(Guido Reni, 1575~1642)도 처형 당일 그녀의 모습을 보기 위해 그곳에 있었다. 귀도 레니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청초한 모습의 베아트리체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고 그녀의 아름다움과 슬픈 눈빛을 잊지 못해 결국 그녀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고 전해온다. 

스탕달이 이 작품을 보고 크게 감동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탕달은 자신이 감동 받았다고 하는 작품이 어느 작품인지 그의 책에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작품일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는데 아마 이 주장은 주인공 베아트리체가 처한 상황이 매우 드라마틱해서 그렇게 믿고 싶은 이유에서 비롯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글쓴이 : 최도성
칼럼니스트이자 영문학자로 세종대와 광운대에서 문학을 강의하는 교수이며, 발길이 닿는 곳이면 세계 어디든 인간과 자연을 탐미하고 그 느낌을 기록으로 남기는 여행가다. ‘코리아 타임즈’에 영문여행기를 연재했다. 저서로는《파리, 그 황홀한 유혹》《일생에 한번은 스페인을 만나라》《일생에 한번은 동유럽을 만나라》《일생에 한번은 이탈리아를 만나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