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로로 재화가 연경을 통하지 않고/ 바다 상인은 일본 땅을 넘나들지 못하네/ 비유하면 들판에 우물이 있는데/ 물 긷지 못하면 저절로 고갈되는 격/ 민생의 안정은 보물에 달려있지 않으니/ 경제생활의 방도가 날로 힘들어짐을 걱정하노라/ 지나치게 검소하면 인민이 즐거워 않고/ 지나치게 가난하면 도둑이 많아진다네

박제가의 시 ‘효좌서회(曉坐書懷)’의 일부분이다. 1778년 그의 첫 번째 중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어느 날 새벽에 쓴 일종의 여행 후기다. 시는 그리 길지 않지만 해로무역육성의 필요성과 검소 관념에 대한 비판 등 박제가의 사상을 오롯이 담고 있다.『조선시대 최고의 경제발전안을 제시한 박제가』는 북학파 내에서도 혁신적인 사상가로 평가받았던 박제가의 평전이다. 책은『북학의』등 박제가의 저서, 생애, 조선 후기의 상황 등을 소개하며 박제가의 사상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추적한다.

책에 따르면, 18세기 후반 조선의 경제는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할 전망을 가지지 못했다. 인구는 증가했지만, 논의 토지생산성은 하락해 인민은 더욱 가난해졌다. 사리 추구에 부정적인 주자학의 영향으로 시장도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기 어려웠다. 한편, 조선의 엘리트들은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청나라의 경제적․문화적 발전을 깨닫게 된다. 이들은 경종 때까지만 해도 오랑캐의 나라라며 깔보던 청나라를 영조 때부터는 냉정하게 파악해 선진 문명으로 인정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명분을 중시하는 주자성리학자들은 18세기 후반에도 청나라를 오랑캐로 비하하는 관념을 고수했다. 

이런 가운데 청나라의 선진 문명을 적극 배우자고 주장한 북학파가 등장했다. 원래 북학파의 전신은 문학 동인 모임인 백탑시파였다. 서자 출신인 박제가는 이덕무, 유득공 등 서류 지식인들과 교유하며 집단을 이뤄 문학 활동을 했다. 모임은 홍대용, 박지원 등이 합류하면서 성황을 이루고 질적으로 성숙해 갔다. 그러다 홍대용의 중국 견문 기록을 계기로 북학파가 성립하게 된다. 북학파는 홍대용을 통해 지구가 둥글고 돈다는 근대적 우주관을 수용하면서 전통적인 화이관(중화사상)을 극복해 근대적 문명관을 수립한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둬야 할 점은 박제가의 북학은 청나라뿐 아니라 일본과 서양 등 외국 문명의 장점을 학습, 도입하려는 자세라는 것이다. 

북학파는 이용후생학파로 불리기도 한다. 박제가는 「농잠총론」에서 생산성 향상이 이용(利用)이고 의복과 식량이 넉넉한 것, 즉 생활수준의 향상이 후생(厚生)이라고 말한다. 책은 박제가의 이용후생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생활수준을 향상한다는 오늘날의 경제학 개념과 맞닿아 있다고 해석한다. 또 박제가가 인민이 부유하고 문화가 발달하고 군사력이 튼튼한 문명국가 건설을 추구했다고 말하며, 그의 경제정책론을 부국책이라고 정리한다. 

박제가는 조선의 빈곤 탈피 방안으로 해로무역을 제시한다. 박제가는 원중거의 일본 여행기를 읽으며 문명 자극을 받았고(당시 도쿠가와 시대를 거치면서 경제적․문화적으로 중국과 대등할 정도로 번성하고 있었다), 홍대용의 중국 여행기를 통해서는 중국 문명을 깊게 수용하게 됐다. 그런 가운데 1778년 연행(중국 사절)으로 박제가는 해로무역육성론에 대한 신념을 다졌다. 그는 3면이 바다이고 중국과 해로무역의 이점을 가진 조선이 건국 이래 400년 동안 해로 통상을 위해 다른 나라로 배 한 척 가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라 여겼다. 그리고 이 같은 내용을 담아 1786년 정조에게 정책건의안 「병오소회」를 제출했다.

국내시장을 육성하는 방도로서 중시한 것은 교통의 개선이었다. 박제가는 운송수단의 미발달이 유통의 낙후를 낳아 가난을 초래했다며 『북학의』에서 수레와 배의 이용을 강조했다. 또 기술과 경영의 발전을 위해 외국 선진기술을 도입하고 경험적 지식만이 아닌 서적을 통한 체계적인 지식구조 완성을 주장했다. 「병오소회」에서 놀고먹는 양반이 나라의 큰 좀이라고 규정한 그는 양반도 상업에 종사하고 뛰어난 상공업자에게도 벼슬을 주자는 당시로서는 지나치게 혁신적인 방안을 내세우기도 했다.

조선후기는 전근대로부터 근대로의 전환을 준비해야 할 시기였다. 하지만 서양 문명의 자극에 잘 대처하지 못하며 식민지로 전락하게 됐다. 박제가의 정책안은 조선의 국력과 사회적 역량을 증대할 수 있는 탁월한 전략이었다. 100년 앞을 내다본 그의 전략은 식민지를 막을 수 있는 방도였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유효할 정도로 뛰어나다. 대한민국의 향방을 결정할 대선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 박제가처럼 자국의 현실을 치열하게 고민하면서도 개방적이며 창의적인 발상을 추구하는 인물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기만 하다.

 

김지영 기자(shining62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