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2일부터 24일까지 2박3일간 트래블리더 8기의 포항~경주 팸투어가 성료되었다. 트래블리더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숨겨진 명소와 즐길거리, 먹거리를 소개하고자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대학생 기자단으로 전국 각지의 대학생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지난 3월 8기가 공식 선발되었다. 여행 전문 전자출판사 테마여행신문(www.upaper.net/themetn)은 한국관광공사가 주최한 팸투어의 전일정에 참가해 포항과 경주가 신규 개발 및 홍보하는 주요 관광지를 동행 취재해 2회에 걸쳐 소개한다.
호미반도권 해안둘레길(호미곶 둘레길) : 호미반도권 해안둘레길, 일명 호미곶 둘레길은 동해면을 시작해 구룡포읍, 호미곶, 장기면 해안을 잇는 58 km의 해안 산책로로 그 중 스토리텔링이 풍부하고 기암괴석이 가득한 동해면 입암리~마산리의 700여 미터 구간이 나무데크로 단장되어 가장 먼저 개통되었다. 입암리~마산리는 포항의 주요 명소를 잇는 포항 시티투어 순환버스의 12번째 경유지로 포항여행자라면 차량 없이도 편리하게 방문할 수 있다. 삼국유사 제1권 기이 제1편에 따르면 바닷가에서 해초를 따던 연오에게 어느날 바위 혹은 물고기가 나타나 그를 싣고 일본으로 갔다고 한다.(혹자는 연오가 포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래를 타고 이동한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의 아내 세오 또한 남편을 찾아 헤매던 중 홀연히 나타난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신기한 것은 고사기(古事記)에 따르면 신라의 신이 동해를 건너 일본 이즈모(出雲)에 와 사람들을 괴롭히던 여덟마리의 큰 뱀을 무찔렀다는 것. 현재까지도 이즈모 지역에는 신라를 비롯한 가야, 고려의 흔적이 신사, 지명, 전설, 풍습 등에 고스란히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학자들은 연오랑과 세오녀 설화를 통해 연오는 당시 일본에 없었던 제철기술을, 세오는 천을 짜는 직조기술을 전파한 기술자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일본이야 연오랑과 세오녀를 얻었지만, 신라에서는 큰 일이 났다. 바로 해와 달이 빛을 잃게된 것! 왕의 명으로 일본으로 급파된 사신은 그들의 귀국을 요청했는데, 연오랑과 세오녀는 이 또한 하늘의 뜻이라며 거절했다. 대신 세오가 짠 명주 비단을 주고 귀국해 제사를 지내라고 명했는데, 다행이 해와 달의 빛이 돌아왔다고 한다. 포항 남구 동해면 일월동, 일월지(경상북도 기념물 제120호, 해병대 1사단 내에 위치) 등의 지명과 호미곶 연오랑 세오녀 동상 등에서 연오랑 세오녀의 흔적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포항은 ‘철강의 도시’이기 이전에 일본의 신이 된 연오랑 세오녀가 탄생한 ‘신화의 도시’인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호랑이의 꼬리, 호미반도(虎尾半島) : 한국인이라면 한반도 지도를 보면 으례 두발로 중국과 러시아를 할퀴는 형상의 백두산 호랑이를 연상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한반도는 언제부터 호랑이에 비유되었을까? 조선 명종의 풍수지리학자 격암 남사고(南師古)는 동해산수비록(東海山水秘錄)을 통해 백두산은 호랑이의 코, 호미곶은 호랑이의 꼬리에 해당한다고 표현한 것이 한반도를 호랑이에 비유한 최초의 문헌기록이다. 호랑이꼬리, 호미곶(虎尾곶)이란 이름에는 이처럼 한국인의 웅대한 기상이 담겨 있다. 꼬리는 동물이 힘을 쓰고 균형을 잡는 부위로 ‘꼬리 잘린 호랑이’ 등을 비롯한 숱한 전설이 전해져 내여온다. 때문에 일제는 한반도의 기세를 꺾고자 호랑이가 아닌 토끼로 격하시켰는데, 호미곶 또한 토끼꼬리로 비유하며 숱한 쇠말뚝을 박았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 호미곶(虎尾곶) :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지리학자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따르면, 호미곶은 한반도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육지다. 또한 현대식 기상관측 결과에 따르더라도 호미곶은 ‘한반도 육지 중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2000년을 기념해 열린 호미곶 한민족해맞이축전은 매년 상설개최되고 있는데,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일출을 만나려는 인파로 북적거리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해맞이 축제’로 자리잡았다. 새천년기념관과 상생의 손 사이에는 호미곶 등대, 국립등대박물관, 유채꽃단지 , 공연장 등을 비롯한 각종 시설이 자리잡고 있어 축제 기간이 아니더라도 호미곶을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 최대의 일본인 가옥거리, 구룡포 근대문화 역사거리 : 일제강점기 조선 전역에 새로운 희망과 기회를 쫓아 수많은 일본인이 개인적으로 혹은 조직적으로 이주를 했다. 구룡포 외에도 군산, 통영, 부산 등 일본과 밀접한 해안마을과 항구에는 일본식 가옥이나 사찰 등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지만, 그 중에서도 구룡포는 일본인의 집단 이주의 흔적을 가장 잘보여주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일본인 가옥거리가 남아 있는 곳이다. 1932년 가가와현(香川縣)에서 이주한 일본인은 구룡포를 거점으로 선박, 운반업, 어업, 통조림회사 등을 운영해 큰 부를 축적, 대규모 거주지를 개척(?)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기 이전까지 최대 300여가구에 달하던 일본인은 모두 귀국하였지만, 500미터에 달하는 골목길에 80여채의 일본식 가옥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포항시는 이 중 일부를 구입하고, 구룡포 일대의 공원 등을 정비해 구룡포 근대문화 역사거리로 재탄생시켰는데 이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일본인 가옥거리’로써 내국인 뿐 아니라 일본인 관광객에게도 인기가 높다.
신라왕손 경주김씨 치동문중의 집성촌, 봉좌마을 : 봉좌마을은 봉황이 내려 앉은 형상이라는 봉좌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문성리, 고지리, 봉계리를 일컫는 지명으로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이자 삼태사(왕의 스승)을 배출한 고장이기도 하다. 특히 봉계리는 신라왕손 경주김씨 치동문중의 집성촌으로 현재까지도 분옥정, 세이탄 등의 문화유산이 전해져 내려온다. 포항의 아름다운 풍경과 역사문화를 간직한 봉좌마을은 현재 봉좌마을 교류센터란 이름으로 관광객을 맞이하는 제2의 농촌마을이자 고향마을로 탈바꿈하고 있다. 경주김씨 동파문중의 분옥정은 조선시대 숙종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추종된 돈옹 김계영(金啓榮)을 기리기 위해 문중에서 건립한 것으로 흐르는 계곡물을 바라볼 수 있는 절경에 T자형으로 지어진 매우 특이한 목조기와집이다. 기와집 내부에서 졸졸졸 흐르는 계곡의 절경도 아름답기 그지 없으며, 비스듬한 지형을 활용해 계곡 아래켠의 나무가 기와집을 살짝 뒤덮을 수 있도록 설계한 높이도 절묘하다. 이 때문에 평지에서는 1층이지만, 계곡에서는 2층으로 보인다.
철의 도시를 흐르는 국내 최초의 관광레져형 운하, 포항운하 : 포항운하는 형산강 입구부터 송도교까지 1.3 km 길이로 건설된 국내 최초의 ‘도심 속 운하’로써, 동빈내항과 형산강을 잇는다. 포항운하의 폭은 15~26 m에 불과할 만큼 폭이 좁은데, 포항크루즈는 운하 양켠에 설치된 90여점의 스틸아트와 벽화, 기기묘묘한 다리, 공원을 조망하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교통수단이자 여행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포항운하관은 포항크루즈의 출발지이자 도착지로 4층 규모의 건축물로써 매표소, 포항운하관, 카페, 전망대, 레스토랑 등을 갖추고 있다. 포항홍보관은 4가지의 테마존을 통해 포항의 과거부터 현재, 미래는 물론 도심재생사업의 일환으로 개발된 포항운하를 소개한다. |